2010년 7월 15일 목요일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 (-the winner stand alone)

 

1. 우리가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잊게 하는 모든것. 그것때문에 우리는 생산하고 또 생산하며 돈을 벌기위해 일에만 열중한다.

2. 전쟁을 벌이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것. 이를테면 제네바 협정

3. 대학에서 수년간 공부한 다음 백수가 되는 것.

4. 30년 후에 은퇴하기 위해 아무 재미도 없는 일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는것.

5. 은퇴한 다음 여생을 즐길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몇 년 후에 권태속에 죽어가는 것.

6.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

7. 행복보다 돈이, 돈보다 권력이 훨씬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8. 돈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야망없는 인간'으로 취급하며 비웃는 것.

9. 자동차, 집, 복장따위를 서로 비교하는것,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이런 비교의 결과로 생을 규정하는것.

10. 외국인에게 절대로 말을 걸지 않는 것, 이웃에 대해 험담하는 것.

11. 부모는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

12.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것, 그리고 아이들을 핑계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같이 사는것. 마치 부부가 지겹도록 싸울 때 아이들은 옆에 없었다는 듯이....

13. 다르게 살아보려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

14. 침대 옆의 신경질 적인 알람시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것.

15. 인쇄라면 무조건 믿는것.

16. 실제 기능은 전혀 없지만 '넥타이'라는 엄숙한 이름을 가진 색깔있는 직물 띠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

17. 직설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것. 내가 정작 알고싶어 하는게 뭔지 상대가 짐작하고 있다 해도.

18. 눈물이 쏟아질것같은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것. 감정에 솔직한 이를 딱하게 바라보는것.

19. 예술이란 부의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아무 가치도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20. 쉽게 얻어진 거라면 모두 경시하는 것. 희생없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21. 우스꽝스럽고 불편해도 유행을 따르는 것.

22. 유명한 사람은 모두 집에다 억만금을 쌓아놓고 있으리라 믿는 것.

23.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24.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척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

25.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행여 유혹하려한다고 오해 받을까봐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

26.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문을 향해 서 있는것. 그 안에 사람이 꽉차 있더라도 마치 혼자인것처럼 느끼면서

27.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큰소리로 웃지 않는 것

28. 북반구에서 항상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것. 봄에는 팔을 들어내는 옷을 입어야 하고(추워도 할 수 없지), 가을에는 모직 조끼를 입고(더워도 어쩔 수 없고.)

29. 남반구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흰 솜뭉치로 장식하는 것. 예수의 탄생과 겨울은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30.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알게 됐다고 믿는것.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있는 삶을 살지도 못했으면서도.

31. 자선파티에 한 번 나간다음, 세상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는것.

32.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하루 세 끼를 꼭 챙겨먹는 것.

33. 다른 사람이 모든 점에서 나보다 낫다고, 더 잘 생겼고, 더 유능하고,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다고 믿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뭔가 시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

34. 자동차를 마치 무적의 갑옷이나 무기인 양 사용하는 것.

35. 운전하면서 욕설을 퍼 붓는것.

36. 제 자식이 잘못을 저지른 이유는 모두 아이가 사귀는 친구 탓이라 생각하는 것.

37.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결혼하는 것. 사랑은 그 다음 문제.

38. 아무것도 시도해본 게 없으면서 항상 '시도해봤다'고 말 하는 것.

39.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것을 아무 기력도 남지 않을 먼 훗날로 미루는 것.

40.  TV라는 마약을 매일 엄청나게 복용하면서 우울함을 잊으려 하는 것.

41. 자기가 얻은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

42. 여자들은 축구를 싫어하고 남자들은 장식과 요리를 싫어 한다고 믿는 것.

43. 모든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

44. 선하고 점잖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힘없고 나약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믿는 것.

45.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무례함을 '강한개성'의 동의어라고 믿는것.

46. 내시경 검사(남자들)와 출산(여자들)을 무서워하는 것.

2010년 6월 13일 일요일

나는 녹즙 아가씨

나는 녹즙 아가씨

김현진/ 에세이스트



 어쩌면 지금까지, 사소하고 소소한 행복을 진작 알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는 피가 펄펄 끓는 시기였으니까. 맥주에 뭘 섞은 폭탄주로 식힐 수밖에 없을 만큼, 그렇게 뜨거웠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살 자신도 없고 그렇게 마실 자신도 없다. 그 시절을 되돌린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다시 스무 살로 만들어 준다면 바로 혀를 확 깨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만큼 독한 시절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나쁠 것도 없었다. 멀쩡히 국립 4년제 대학을 빚 안 지고 제 힘으로 다녔지, 좀 허접해도 월급 밀리지 않는 회사에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정규직으로 몇 년 월급 타 먹었지, 폭삭 망했고 다시 일 들어올 기미도 없어 보이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단 등단은 했고, 2년이나 질질 끌며 휴학 중이지만 뭐 어찌어찌 대학원도 합격해서 적을 두고 있고, 돈 없는 거 빼고 꽉 찬 나이에 시집 갈 가망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것을 빼면 그럭저럭 열심히 산 인생이었다.


 부족한건 다만 자족의 힘이었다. 성서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했다.

 그 일체의 비결,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몰랐고 앞으로 더 배우고 끝없이 배워야 할 것이었다. 지금 병상에 누워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역시, 그 ‘일체의 비결’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고 특유의 간명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20대가 독하고 힘들었던 건 여기보다 어딘가에, 하고 중얼거리며 끝없이 뭔가 대단히 로맨틱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삿된 망상 때문이었다. 망상이 헛된 기대를 부르고 망상과 기대가 힘을 합쳐 피를 펄펄 끓게 하던 거였다. 비천에 처하기도 하고 풍부에 처하기도 하고 배부르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한 것이 인생일 텐데, 비천에 처하면 이상하게 여기고 배가 고파지면 억울해하다 보니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홧술이나 들이켜고 사방에 민폐를 끼치는 삶을 산 지 어언 10년. 남이라면 절대 상종 안 하겠건만 하필이면 지긋지긋한 이 여자는 나 자신, 평생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니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 근면한 인간이 돼야 했다. 특기라고는 잠 적게 자는 것, 아침에 벌떡 빨리 일어나는 것, 30분 안에 책 한 권 읽는 것, 타자 1분에 1,300타 치는 것, 대형 오토바이 면허증, 몸이 바지런하고 잽싼 것뿐인데 생활에 별 도움 되는 재주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조건에 일치하는 밥벌이가 아침에 하는 녹즙 배달이었다. 전단지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주부 사원 모집이라기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다 대고, 결혼 못했으면 녹즙 배달도 못하나요, 하고 구슬프게 물었다. 그건 꼭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아가씨들이 하기엔 좀 그런 일이라며 지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500명 정도 배달 사원을 썼지만 결혼 안 한(못한) 아가씨를 쓴 적은 없다면서 망설였지만, 면접에서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여덟 번쯤 말하자 채용해 줬다. 내가 비정규직인지 하청 사업자인지도 모르겠고 종종 잡상인 취급을 당하지만, 잡상인이 아닐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사는 이상 우리 모두는 노동 시장에 자기를 파는 잡상인이니까.


 훌륭한 잡상인으로 살아야지, 중얼거리며 일생의 연인과 이별하는 기분으로 술을 끊었다. 그 많은 술이 없었다면 그 많은 연애, 혹은 사고를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을 텐데 아직까지 술을 미워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술과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끊는 김에 담배도 끊고 고기도 끊고 음식도 줄였다.

 술을 끊으니 돈 나갈 데가 확 줄었다. 아등바등 돈 버는 독한 재주만 생활력인 줄 알았더니 돈  쓰는 재주도 버젓한 생활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을 줄이니 몸도 가벼워지고 간혹 먹는 음식 맛을 천천히 음미하게 됐다. 예전에는 뭔가 할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게 얼마나 좋은 세상이었나 돌이켜 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거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더 질 높은 자유.


 일이 쉽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이나 글 팔아먹고 사는 거나 카페 알바 같은 건 노동의 ‘ㄴ'자도 붙이기 민망하다 싶었다. 지사장님은 어쩐지 구성진 말투로 “이 일이, 비가 오면 좀 서글퍼요” 하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비가 왔다. 청소 아줌마들은 새벽 다섯 시에 나온다. 사무실에도 책상 앞에 앉아 밤새도록 일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고 감탄하면 건너 책상에 앉은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요즘 가정이 안 좋은 거지” 하고 뭔가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관조의 태도를 보인다.


 사정이 있어서 관둬야 했던 저번 아줌마에서 내가 담당으로 바뀌고 나서 먹던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새로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말이라도 붙여 보면 찡그린 얼굴로 손부터 내저어 기가 팍 죽어서는 녹즙 가방과 수레를 질질 끌고 나오면 경쟁 브랜드 배달 아줌마가 안쪽에서 빤히 보면서도 문도 안 열어 주고, 회사에서 입히는 조끼는 뒤에 ‘결사 투쟁’ 이라고 적어 놔도 하나도 안 이상할 것 같아 기분이 묘하고, 스키니진이라도 입고 나온 날이면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한참 잔소리를 듣지만 새벽에 벌떡 일어나 일 나가는 건 전혀 싫지 않다.


 숫기가 없어서 좋은 영업 사원이 되기엔 틀린 것 같다. 그렇지만 회사 다닐 적에 아침에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그때는 저녁 여섯 시까지 사무실에 갇혀 일해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싫었다. 달마다 엄마에게 돈을 부치지 않아도 됐다면 진작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전세금을 엄마에게 털어 주고 내 능력으로 회사 생활 같은 거 하기에는 틀린 것 같다고 고백 한 다음 마이너스 통장만 끌어안고 있다가 비로소 아침 일찍 일 나가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낫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보면 한때 내가 그이들 중 하나였으므로 확실히 알고 있는 바로 그 표정,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그 표정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을 한다. 내가 그 사람들의 4분의 1이나 벌까 싶지만 대신 네 배는 행복하다. “이 일에도 어떤 어드벤처가 있다”라며 ‘어드밴티지’를 잘못 말한 게 분명한 지사장님도 귀엽고, “저 3층 흑마늘 이에요”라고 문자하는 과장님도 귀엽고, 별 것 아닌 일들이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마 앞으로 나는 돈 잘 못 벌 것이고 불같은 기세로 영업을 해서 수당을 엄청 받는 일도 없을 것이고 뭐 그저 그렇겠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처럼, 지금은 ‘이게 다예요(C'est tout)'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대학원 휴학생. 잡상인 취급받아도 사소한 것에 웃을 수 있게 된 나는 녹즙 아가씨, 이게 다예요.


/ 월간 작은책 5월호

딸아, 연애를 해라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해라

- 시인 문정희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기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고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의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 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었다는 것은 너도 잘 일고 있으리라.

딸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이제부턴 다이어트를 멈추어라.
자본주의 상인의 줄자나 저울에나 맞는 그 나약한 몸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 내려고 몸무게를 줄이느냐.
날씬한 허리. 균형잡힌 몸매를 원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을 생각할 때 딱 한 가지뿐이다.

땀 흘려 일하고 입을 쩍 벌려서 상추쌈을 먹고 늑대같은
야성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또 사랑을 하는 그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 되거라.
탐스럽고 비옥한 대지와 무한한 생산성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힘이요, 미의 원천이란다.
다가오는 세기의 진정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듯
넘치는 야성과 넓고 순수한 힘을 가진 여성일 것이다.

20세기 업적의 하나로 남녀 차별과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말라깽이가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얼굴이 검은 여자도 아름답고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얼마나 시원하고 편하고 멋있느냐.

몸이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지 않니?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상인들이 만든 유치한 옷걸이로
전락시키거나 짧은 수명의 유행상품으로 변장시킨 줄도 모르고
끝없이 몰려다니는 가련한 미인군이나
막무가내의 소비의 인질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작푸르2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직장 일과 가족 간의 균형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하지만 성취감이 커서 일의 만족도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스콧 스키먼 교수팀은 미국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자기 일은 얼마나 창의성을 요구받는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만족감에 대해 조사했다.

가령 '업무에서 자주 새로운 일을 배우는가', '얼마나 자주 새로운 문제해결을 하도록 요구 받는가'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계발하도록 업무여건이 돼 있는가"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는 직장의 요구가 있는가' 등을 물었다.

그 결과 업무에서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업무압박이 컸다. 이들은 일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도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 문자 전화 등을 수시로 받았다. 즉,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도 끊임없이 회사 일을 신경 써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키먼 교수는 "창의적인 일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일과 시간 외에도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점이 이런 장점을 상쇄 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기 일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스키먼 교수는 “창의적인 일은 단조로운 일과 다르게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고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사회과학연구(Social Science Research)'에 발표됐으며 미국 과학논문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등이 9일 보도했다.

작푸르

 

한명숙씨를 검찰이 열심히 털어댔습니다.

아무 것도 안나왔죠.

그런데 검찰은 "그럼 그건 됐고 다른 게 또 있다" 며 들고 나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이 열심히 털어댔습니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은 전혀 거론된게 없죠.

그런데 자살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사과도 안했고 관련자 문책은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듯 합니다.

 

 

조중동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A가 ~~ 라면 A는 지탄받아 마땅한 나쁜X다"

아니라는게 밝혀져도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말합니다. A는B다.

그게 아니라는게 불과 몇시간도 안되어 밝혀집니다.

그러면 말합니다.  그것은 오해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렇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을 대 놓고 공개적으로 의심하여 못살게 굴었는데, 그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래서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데도 사과 안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죄 없는 처녀를 동네 아줌마들끼리 괜히 쑥덕거려서 소문이 퍼지기만 했어도 미안하다고 하는게 옳은걸텐데, 오히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냐"며 따집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발을 뺍니다.

 

왜일까요?

 

"난 소중하니까"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치입니다. 상호간의 존중은 없습니다.

 

원래 예의라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예의라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요소가 있다면 "권력"과 "돈"과 "나이" 입니다. 권력과 돈과 나이가 있으면 존중하는게 예의고(그것도 권력, 돈, 나이 순으로..) 그게 없으면 일단 날 존중하는게 예의입니다.

 

 

클리앙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런데 클리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5월 7일 금요일

크리틱 예절

학교에서 크리틱은 중요하다. 자기 작업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서, 타인의 영향을 적절히 생산적으로 제어하는 훈련으로서, 서로 다른 평가와 판단의 소나기 속에서 자기 확신을 가다듬는 단련으로서, 다른 사람 작품을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자기 작업을 돌이켜보는 기회로서 그렇다. 물론, 크리틱은 격투다. 또는 그래야 마땅하다. "다양한 관점과 취향이 있는 거니까요!" 운운하며 그저 상대를 토닥거리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크리틱이 아니라 다과회를 하는 게 좋다.

그러나 격투에도 일정한 예절이 있듯이, 크리틱에도 예절이 있을 법하다. 물론 형식적 예절을 내세워 자유로운, 때로는 뜨거운 설전이 오가는 일을 막는 것도 문제겠지만, 반대로 간단한 예절을 지키지 않아 공연히 분위기를 냉각시킬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도 크리틱 예절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나마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런저런 크리틱을 겪으면서 필요하다고 느낀 예절이 몇몇 있다.


1) 작품을 발표하고 크리틱을 받는 측

- 현학적인 표현을 남용하지 말자. 개념어를 부적절하게 남용하면, 그 개념어에 익숙한 이에게는 부실한 작품을 포장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자신을 압도하려 한다는 불쾌감을 산다. 특정 개념이 자기 작업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개념을 크리틱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최소한 대부분이 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면, 그 개념을 먼저 간단히 설명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념어를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개념어를 쓰는 목적은 소통을 명확하고 경제적으로 하는 데 있는데, 5분 발표하면서 특정 개념어 설명에 3분을 써버리는 건 절대로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다.

- 자신이 느끼기에 부적절하거나 '멍청한' 제안을 받더라도, 제안한 이를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표정 관리도 중요하다. 이는 일반적 예의범절을 떠나, 원활한 크리틱에 꼭 필요한 자세다. '멍청한 제안이나 질문을 하면 무시당하는구나'라는 느낌이 퍼지면 활발한 토론이 어려워진다.

-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는 피하자. 어차피 자기 작업은 자기 것이고, 그에 대한 결정은 자기 몫이다. 자기 작품을 공격하는 비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리 적대적인 비평자를 만났다 해도 그가 자기 작품에 대한 결정권마저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 비평하는 측에서는 부담을 느끼고, '에이, 그냥 넘어가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크리틱에 참여해 작품을 발표하는 목적이 '그냥 넘어가는' 데에 있다면 할 말 없다. (거꾸로, 독하고 변태적인 비평자라면 그처럼 방어적인 사람을 괴멸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테고, 때로는 그 충동을 행동에 옮길 것이며, 유능한 비평자라면 괴멸에 성공할 것이다. 자기 작업에 방어적인 이가 이런 결과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자기 작품이나 그에 대한 설명에 타인이 원하는 만큼 집중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핀잔하지 말자. 예컨대 어떤 지적이나 질문에 대해 습관적으로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아까 설명했는데요..."라는 말로 답을 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듣는 사람은 "아까 설명했는데요" 뒤에 생략된 "(이 바보야)"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한숨을 쉬는 건 당연히 최악이다. 상대방이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 작품을 봐주는 데 고마워해야 한다.

- 격투기-크리틱에서 공격법이나 방어법 연습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비평해오는 상대방의 일관성을 거론함으로써 제 작품을 방어하는 태도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당신 아까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잖아!"라거나 나아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그런 생각에서 작업을 하느냐?" 따위가 그렇다. 크리틱 룸은 법정이 아니다. 크리틱에서 다른 사람 작품을 비평하는 측에게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의무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만 비평할 자격이 있다는 느낌이 퍼지는 것도 곤란하다.)


2) 타인의 작품을 크리틱하는 측

- 현학적인 표현을 남용하지 말자. 개념어를 부적절하게 남용하면, 그 개념어에 익숙한 이에게는 부실한 관찰을 포장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자신을 압도하려 한다는 불쾌감을 산다. 특정 개념이 자기 견해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개념을 크리틱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최소한 대부분이 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면, 그 개념을 먼저 간단히 설명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념어를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개념어를 쓰는 목적은 소통을 명확하고 경제적으로 하는 데 있는데, 1분 비평하면서 특정 개념어 설명에 3분을 써버리는 건 절대로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다.

- 위 예절의 연장선으로서, 함부로 비교하지 말자. 예컨대 뜬금없이 "네 작품은 일리야 카바코프를 연상시킨다" 어쩌고 하면서 다른 -- 생소한! -- 인물이나 작품을 거론하는 건, 그것이 칭찬이건 비난이건 간에 ('그래서 어쩌라고!'), 결국 논평을 빙자한 자기 자랑에 그치기 쉽다. 문제는 그런 자기 자랑이 생각보다 쉽게 간파된다는 것.

- '일반 대중' 등 불특정 다수를 동원해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려 하지 말자. 특히 디자인 크리틱에서 "일반 대중은 이해하지 못할 듯" 현상이 심하다. 그냥 솔직히 "나는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하면 된다.

- 비평할 때, 선생이나 상급자 등 그 자리에 있는 '권위자'에게 호소하려 하지 말자. 발표자를 직접 겨냥하거나 배려하기보다, 권위자의 마음을 사려고 하는 비평은 비릿하다. 심지어 비평을 하면서 대화 상대인 발표자가 아니라 선생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태도는 자기 생각보다 훨씬 빤히 드러난다.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불쾌한 비평자는 별로 없다.

- 위 예절의 응용으로서, 비평을 하며 다른 청중의 마음을 사려 하지도 말자.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를 매개 또는 희생양 삼아 동료 사이에서 자기 영향력을 퍼뜨리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물론 이런 싸움법이 일반 '평단'에서는 필요하거나 최소한 용인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학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내 생각에 학교에서 크리틱은, 본질상 비대칭적이지만(발표자와 비평자/청중은 근본적으로 다른 위상에서 토론에 참여한다) 그럼에도 작가와 감상자의 직접적인 대화를 전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크리틱에 쓰이는 온갖 전략, 전술, 감언이설, 수사, 재치, 지성 등등은, 결국 '나와 너'가 작가 대 감상자로서 '대화'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나머지 정치는 기껏해야 나머지에 불과함을 동의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예절이 있겠으나, 우선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모두 상식을 존중하면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예절이다. 그런데 상식적 예절조차 지키기가 어려우니 어쩌랴.

 

퍼옴 : minister.egloos.com/5262730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091029 제천 종합 사회관 <훨훨간다> 리뷰

이 날 공연은 기운이 많이 빠지는 날이었다. 문과 봉봉도 관객에게 기운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일까? 에 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1. 아이들이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앉는 자리를 계속 옮기고 그래서 짜증이 좀 나있었을 거다.

2..관객 가운데에 있는 기둥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산만해졌을 것이다.

3. 첫 등장부터 뭔가 어설펐다.

 

첫 등장 부터 연출하여 아이들을 반기고 자리에 앉히는 것도 도와줘야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무대 막을 꼭 가져갔으면 좋겠다.

 

확실히 반복연습을 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 좀 잘 맞춰보자.

할아버지가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나, 훨훨간다 노래 부를 때, 이야기 할 때.

그리고 나는 자꾸 반복 되는 것들이 재미없게 느껴지는데 -특히 시장부분에서 아저씨 나오고 아줌마 나올 때 조금 분위기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