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3일 일요일

나는 녹즙 아가씨

나는 녹즙 아가씨

김현진/ 에세이스트



 어쩌면 지금까지, 사소하고 소소한 행복을 진작 알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는 피가 펄펄 끓는 시기였으니까. 맥주에 뭘 섞은 폭탄주로 식힐 수밖에 없을 만큼, 그렇게 뜨거웠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살 자신도 없고 그렇게 마실 자신도 없다. 그 시절을 되돌린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다시 스무 살로 만들어 준다면 바로 혀를 확 깨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만큼 독한 시절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나쁠 것도 없었다. 멀쩡히 국립 4년제 대학을 빚 안 지고 제 힘으로 다녔지, 좀 허접해도 월급 밀리지 않는 회사에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정규직으로 몇 년 월급 타 먹었지, 폭삭 망했고 다시 일 들어올 기미도 없어 보이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단 등단은 했고, 2년이나 질질 끌며 휴학 중이지만 뭐 어찌어찌 대학원도 합격해서 적을 두고 있고, 돈 없는 거 빼고 꽉 찬 나이에 시집 갈 가망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것을 빼면 그럭저럭 열심히 산 인생이었다.


 부족한건 다만 자족의 힘이었다. 성서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했다.

 그 일체의 비결,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몰랐고 앞으로 더 배우고 끝없이 배워야 할 것이었다. 지금 병상에 누워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역시, 그 ‘일체의 비결’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고 특유의 간명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20대가 독하고 힘들었던 건 여기보다 어딘가에, 하고 중얼거리며 끝없이 뭔가 대단히 로맨틱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삿된 망상 때문이었다. 망상이 헛된 기대를 부르고 망상과 기대가 힘을 합쳐 피를 펄펄 끓게 하던 거였다. 비천에 처하기도 하고 풍부에 처하기도 하고 배부르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한 것이 인생일 텐데, 비천에 처하면 이상하게 여기고 배가 고파지면 억울해하다 보니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홧술이나 들이켜고 사방에 민폐를 끼치는 삶을 산 지 어언 10년. 남이라면 절대 상종 안 하겠건만 하필이면 지긋지긋한 이 여자는 나 자신, 평생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니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 근면한 인간이 돼야 했다. 특기라고는 잠 적게 자는 것, 아침에 벌떡 빨리 일어나는 것, 30분 안에 책 한 권 읽는 것, 타자 1분에 1,300타 치는 것, 대형 오토바이 면허증, 몸이 바지런하고 잽싼 것뿐인데 생활에 별 도움 되는 재주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조건에 일치하는 밥벌이가 아침에 하는 녹즙 배달이었다. 전단지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주부 사원 모집이라기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다 대고, 결혼 못했으면 녹즙 배달도 못하나요, 하고 구슬프게 물었다. 그건 꼭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아가씨들이 하기엔 좀 그런 일이라며 지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500명 정도 배달 사원을 썼지만 결혼 안 한(못한) 아가씨를 쓴 적은 없다면서 망설였지만, 면접에서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여덟 번쯤 말하자 채용해 줬다. 내가 비정규직인지 하청 사업자인지도 모르겠고 종종 잡상인 취급을 당하지만, 잡상인이 아닐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사는 이상 우리 모두는 노동 시장에 자기를 파는 잡상인이니까.


 훌륭한 잡상인으로 살아야지, 중얼거리며 일생의 연인과 이별하는 기분으로 술을 끊었다. 그 많은 술이 없었다면 그 많은 연애, 혹은 사고를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을 텐데 아직까지 술을 미워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술과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끊는 김에 담배도 끊고 고기도 끊고 음식도 줄였다.

 술을 끊으니 돈 나갈 데가 확 줄었다. 아등바등 돈 버는 독한 재주만 생활력인 줄 알았더니 돈  쓰는 재주도 버젓한 생활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을 줄이니 몸도 가벼워지고 간혹 먹는 음식 맛을 천천히 음미하게 됐다. 예전에는 뭔가 할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게 얼마나 좋은 세상이었나 돌이켜 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거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더 질 높은 자유.


 일이 쉽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이나 글 팔아먹고 사는 거나 카페 알바 같은 건 노동의 ‘ㄴ'자도 붙이기 민망하다 싶었다. 지사장님은 어쩐지 구성진 말투로 “이 일이, 비가 오면 좀 서글퍼요” 하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비가 왔다. 청소 아줌마들은 새벽 다섯 시에 나온다. 사무실에도 책상 앞에 앉아 밤새도록 일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고 감탄하면 건너 책상에 앉은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요즘 가정이 안 좋은 거지” 하고 뭔가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관조의 태도를 보인다.


 사정이 있어서 관둬야 했던 저번 아줌마에서 내가 담당으로 바뀌고 나서 먹던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새로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말이라도 붙여 보면 찡그린 얼굴로 손부터 내저어 기가 팍 죽어서는 녹즙 가방과 수레를 질질 끌고 나오면 경쟁 브랜드 배달 아줌마가 안쪽에서 빤히 보면서도 문도 안 열어 주고, 회사에서 입히는 조끼는 뒤에 ‘결사 투쟁’ 이라고 적어 놔도 하나도 안 이상할 것 같아 기분이 묘하고, 스키니진이라도 입고 나온 날이면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한참 잔소리를 듣지만 새벽에 벌떡 일어나 일 나가는 건 전혀 싫지 않다.


 숫기가 없어서 좋은 영업 사원이 되기엔 틀린 것 같다. 그렇지만 회사 다닐 적에 아침에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그때는 저녁 여섯 시까지 사무실에 갇혀 일해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싫었다. 달마다 엄마에게 돈을 부치지 않아도 됐다면 진작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전세금을 엄마에게 털어 주고 내 능력으로 회사 생활 같은 거 하기에는 틀린 것 같다고 고백 한 다음 마이너스 통장만 끌어안고 있다가 비로소 아침 일찍 일 나가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낫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보면 한때 내가 그이들 중 하나였으므로 확실히 알고 있는 바로 그 표정,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그 표정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을 한다. 내가 그 사람들의 4분의 1이나 벌까 싶지만 대신 네 배는 행복하다. “이 일에도 어떤 어드벤처가 있다”라며 ‘어드밴티지’를 잘못 말한 게 분명한 지사장님도 귀엽고, “저 3층 흑마늘 이에요”라고 문자하는 과장님도 귀엽고, 별 것 아닌 일들이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마 앞으로 나는 돈 잘 못 벌 것이고 불같은 기세로 영업을 해서 수당을 엄청 받는 일도 없을 것이고 뭐 그저 그렇겠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처럼, 지금은 ‘이게 다예요(C'est tout)'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대학원 휴학생. 잡상인 취급받아도 사소한 것에 웃을 수 있게 된 나는 녹즙 아가씨, 이게 다예요.


/ 월간 작은책 5월호

딸아, 연애를 해라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해라

- 시인 문정희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기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고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의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 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었다는 것은 너도 잘 일고 있으리라.

딸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이제부턴 다이어트를 멈추어라.
자본주의 상인의 줄자나 저울에나 맞는 그 나약한 몸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 내려고 몸무게를 줄이느냐.
날씬한 허리. 균형잡힌 몸매를 원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을 생각할 때 딱 한 가지뿐이다.

땀 흘려 일하고 입을 쩍 벌려서 상추쌈을 먹고 늑대같은
야성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또 사랑을 하는 그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 되거라.
탐스럽고 비옥한 대지와 무한한 생산성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힘이요, 미의 원천이란다.
다가오는 세기의 진정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듯
넘치는 야성과 넓고 순수한 힘을 가진 여성일 것이다.

20세기 업적의 하나로 남녀 차별과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말라깽이가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얼굴이 검은 여자도 아름답고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얼마나 시원하고 편하고 멋있느냐.

몸이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지 않니?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상인들이 만든 유치한 옷걸이로
전락시키거나 짧은 수명의 유행상품으로 변장시킨 줄도 모르고
끝없이 몰려다니는 가련한 미인군이나
막무가내의 소비의 인질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작푸르2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직장 일과 가족 간의 균형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하지만 성취감이 커서 일의 만족도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스콧 스키먼 교수팀은 미국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자기 일은 얼마나 창의성을 요구받는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만족감에 대해 조사했다.

가령 '업무에서 자주 새로운 일을 배우는가', '얼마나 자주 새로운 문제해결을 하도록 요구 받는가'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계발하도록 업무여건이 돼 있는가"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는 직장의 요구가 있는가' 등을 물었다.

그 결과 업무에서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업무압박이 컸다. 이들은 일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도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 문자 전화 등을 수시로 받았다. 즉,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도 끊임없이 회사 일을 신경 써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키먼 교수는 "창의적인 일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일과 시간 외에도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점이 이런 장점을 상쇄 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기 일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스키먼 교수는 “창의적인 일은 단조로운 일과 다르게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고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사회과학연구(Social Science Research)'에 발표됐으며 미국 과학논문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등이 9일 보도했다.

작푸르

 

한명숙씨를 검찰이 열심히 털어댔습니다.

아무 것도 안나왔죠.

그런데 검찰은 "그럼 그건 됐고 다른 게 또 있다" 며 들고 나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이 열심히 털어댔습니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은 전혀 거론된게 없죠.

그런데 자살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사과도 안했고 관련자 문책은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듯 합니다.

 

 

조중동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A가 ~~ 라면 A는 지탄받아 마땅한 나쁜X다"

아니라는게 밝혀져도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말합니다. A는B다.

그게 아니라는게 불과 몇시간도 안되어 밝혀집니다.

그러면 말합니다.  그것은 오해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렇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을 대 놓고 공개적으로 의심하여 못살게 굴었는데, 그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래서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데도 사과 안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죄 없는 처녀를 동네 아줌마들끼리 괜히 쑥덕거려서 소문이 퍼지기만 했어도 미안하다고 하는게 옳은걸텐데, 오히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냐"며 따집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발을 뺍니다.

 

왜일까요?

 

"난 소중하니까"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치입니다. 상호간의 존중은 없습니다.

 

원래 예의라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예의라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요소가 있다면 "권력"과 "돈"과 "나이" 입니다. 권력과 돈과 나이가 있으면 존중하는게 예의고(그것도 권력, 돈, 나이 순으로..) 그게 없으면 일단 날 존중하는게 예의입니다.

 

 

클리앙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런데 클리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