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8일 금요일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사무엘 베케트 : krapp's last tape



#Krapp's Last Tape
베케트 작품들 중 유일한 1인극이며, 주인공 크랩이 30년 전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테잎을 재생함으로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기억과 현재심리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한 당혹감을 어찌할 바 모르는 크랩. 목청을 가다듬고 크랩은 마지막이 될 테잎을 녹음한다. 결국 그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크랩의 이 마지막 테잎의 마지막 구절만은 그의 남은 생과 일치하게 되리라.
"내 생애의 가장 좋은 날들은 지나가버린 것 같다.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는데. 그러나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겠다. 지금 내게 그때의 그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님에랴.
그렇다, 나는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다."
(크랩은 꼼짝도 않은 채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테이프만 돌아가고 있다.)

#<침묵과 소리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中에서 - 권혜경 지음, 도서출판 동인
제2장 기억과 글쓰기
1. 크랩의 마지막 테이프 : 말의 기록과 반복

............................

크랩은 말의 기록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말의 헛된 반복(futile repetition)을 듣는 크랩의 심정은 곧
"모든 언어는 언어의 과잉이다. (all language is an excess of language, Beckett 1983 107)"
이라고 말한 모란(Moran)의 인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크랩의 귀착지가 침묵임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침묵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강박적인 이상에 희생당한 삶의 실패자로서의 크랩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과 말의 헛됨을 인식한 투명한 응시(staring)의 소유자로서 크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그가 마지막 부분에 녹음하는 테이프는 아마 그의 마지막 테이프가 될지도 모른다. 유한한 인간의 삶, 즉 시간과의 속절없는 싸움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자신의 인생을 말로써 기록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집착했었던 "껍질에서 알맹이를 골라내기"에 부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인생 중 의미깊다고 생각되는 항목들을 기록해두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침식당한 크랩의 기억력은 그가 생각한 원래의 의도를 따라잡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유한함을 더욱 더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히려 노년의 크랩을 보다 사로잡는 것은 '껍질'에 불과했던 주변부 기억들이며, 그는 젊은 시절에 갖지 못했던 통찰력으로 알맹이와 껍질, 중심의 기억과 주변부의 기억드을 모두 아우르는 확대된 인식의 폭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헛된 반복"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에게 남겨진 것은 여전히 그의 기억과 말하기, 곧 글쓰기인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목소리를 기록하고 또 과거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하여 재생함으로써 편집자, 더 나아가 작가의 기능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백자대호 - 김원용


조선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 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白衣의 민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 古今未有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비에도 지지 않고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 雨ニモマケズ
-미야자와 켄지 - 宮沢賢治(1896~1933)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아메니모 마케즈 
風にもマケズ                                     바람에도 지지 않고
카제니모 마케즈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 않는  

유키니모 나츠노 아츠사니모 마케누
丈夫ナカラダヲモチ                           튼튼한 몸을 가지고
죠오부나 카라다오 모치

慾ハナク                                           욕심은 없이
요쿠와 나쿠
決シテ怒ラズ                                    결코 화내지 않으며
켓시테 오코라즈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이츠모 시즈카니 와랏테이루
一日二玄米四合ト                             하루에 현미 네 홉과
이치니치니 겐마이 욘고우토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된장과 얼마간의 채소를 먹으며
미소토 스코시노 야사이오 타베
アラユルコトヲ                                모든 일에
아라유루 코토오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に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지분오 칸죠우니 이레즈니
ヨクミキキシワカリ                         잘 보고 들어 깨닫고
요쿠 미키키시 와카리
ソシテワスレズ                               그리고 잊지 않으며
소시테 와스레즈
野原ノ松ノ林ノ陰ノ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
노하라노 마츠노 하야시노 카게노
小サナ萱ブキノ小屋二ヰテ               작은 짚으로 인 초가에 살면서
치이사나 카야부키노 코야니 이테
東二病気ノコドモアレバ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히가시니 뵤우키노 코도모 아레바
行ッテ看病シテヤリ                         가서 간호해 주고
잇테 칸뵤우시테 야리
西二ツカレタ母アレバ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니시니 츠카레타 하하 아레바
行ッテソノ稲ノ束ヲ負ヒ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잇테 소노 이나노 타바오 오히
南二死二サウナ人アレバ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미나미니 시니소우나 히토 아레바
行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일러주고

잇테 코와가라나쿠테모 이이토 이히

北二ケンクワヤソショウガアレバ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키타니 켄카야 소쇼우가 아레바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부질 없으니 그만두라 이르고
츠마라나이카라 야메로토 이히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며
히데리노 토키와 나미다오 나가시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걸어
사무사노 나츠와 오로오로 아루키
ミンナニデクノボウトヨバレ              모두에게 등신이라 불리우고
민나니 데쿠노보우토 요바레
ホメラレモセズ                                  칭찬도 받지 못하고
호메라레모 세즈
クニモサレズ                                     골칫거리도 되지 않는
쿠니모 사레즈
サウイフモノニ                                 그런 사람이
소우이우 모노니
ワタシハ                                           나는
와타시와
ナリタイ                                 되고 싶다.
나리타이

 

2010년 9월 3일 금요일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물값이 6만 3천원이 나왔다.

밀렸던 생활비까지 합치면 15만원이나 된다.

속이 뒤틀려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잤다.

마사지 티켓 지르지 말 것을 그랬다.

지금도 수도꼭지는 정신나간 소가 침 질질 흘리는 것 마냥 물 뚝뚝 흘리고 있겠지.

2010년 8월 26일 목요일

천둥치는 밤

 

 

워크숍 때 쓰기 위해 빈약한 솜씨로 제작.

내 심장은 붉다.

널 보면 고 붉은 것이 복어처럼 부풀어오른다.

팔딱팔딱 튀어오르는 것은 꼭 괴기 아가미.

뜨겁게 흐르는 - 머리 휘감고 다시 돌아 온 푸른 피.

아가미에서 슬금슬금 베어나오는 것은 비린내.

비린내 안에 기억하려해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은 냄새.

보송한 빨래더미에 굵게 자라난 사과나무.

그곳에 흐르는 달콤한 사과즙.

 

널 만날 때면 복어괴기아가미비린내사과즙에 머리는 자지러진다.

 

-

 

너에게서 벗어나려고 콩

자석에 이끌리듯 딱

콩딱

콩딱

콩떡

떡콩

결국은 콩고물.

어디 너한테서 콩고물 하나 안떨어지나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콩딱콩떡 내마음.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일기

열두시 전에 침대에 누웠는데 계속 말똥말똥

한시간정도 누워있다가 수면유도음악틀고 누웠는데도 계속 말똥말똥

물 벌컥벌컥 마셔도 TT 몇 일째 이런다.

오늘도 두시간째 잠을 못들어서 결국 일년만에 수면유도제를 다시 들었다. 다행히 한 알이 남아있었다. 예전엔 두알씩 먹었었는데 한알로 되려나 모르겠다. 내일 비상용으로 더 사둬야겠다.

사실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정신은 멀쩡한데 다리부터 무거워지는 것이 아주 불쾌하다.

게다가 중간에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던데...

좀 푹 잤으면 좋겠다.

왜 잠을 못자는 걸까?

시원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일이 찝찝했기 때문일까.

-

호두 생각이 난다.

호두가 없어서 그런지 못해준 일만 새록새록

더 간식 사주고 더 쓰다듬어 줄 것을 그랬다.

이리 저리 팔랑팔랑 헥헥헥헥 온곳을 쏘아다니며 즐겁게 지내면 좋을텐데.

호두 보고파라.

-

일년전 녀자들 생각도 난다.

하짱 생각도 난다.

촌닭들도 생각난다.

보고파라.

윽 밤의 넋두리는 처량하군.

-

슬슬 무거워지네. 자러가야지.

2010년 8월 4일 수요일

마주이야기

2009년 10월 10일

 

엄마의 결혼 반지를 보며

세찬 : 와~ 예쁘다.

엄마 : 세찬이도 이다음에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 엄마가 이렇게 예쁜 반지 사 줄께~~

세찬 : (부끄러운 듯 웃으며 살짝 앙탈을 부리듯) 싫어엉~~

엄마 : 뭐가 싫어? 엄마 아빠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도 해서 세찬이랑 윤채를 낳았잖아.

세찬 : (한참 생각하다가) 어딜 가다가 만났는데?

엄마 : 띠요용~~~

 

 

2009년 11월

 

세찬이와 윤채랑 함께 차를 타고 집에 돌아 오는 길이었다.

윤채 : 엄마! 불 좀 켜줘.

엄마 : 왜?

윤채 : 코딱지 파게~~

엄마 : 엄마 운전하는 데 방해 되니까 불 켜면 안돼.

세찬 : (얼른 머리위에 있는 실내등을 켜주며) 내가 켜 줬어.

윤채 : (낄낄 거리며 웃는다) 하하하하 코딱지 다 팠다. 휴지 줘.

뒷처리 다하고 한참을 달리는데..

윤채 : (자지러지게 웃으며 창밖을 가리킨다) 하하하하! 엄마 쟤도 코딱지 팠나봐!

윤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실내등이 켜진 자동차 한대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2009년 7월 27일

 

낮에 하마방에 당당하게 입성하고 돌아온 세찬이에게 엄마가 물었다.

(하마방에 가면 주혁이랑 칼싸움도 하며 놀 수 있다고 꼬셔 두었던 터라.....)

엄마 : 세찬아! 하마방에서 주혁이랑 칼싸움하고 놀았어?

세찬 : 아니? 칼이 없었어.

엄마 : 낮에 살짝 보니까 칼 같이 긴 것을 만들어서 놀고 있던데, 그거 칼 아니었어?

세찬 : (한참 생각하더니 씩 웃는다) 그거! 그건 새로운 발명품이야.

엄마 : 발명품? 무슨 발명품?

세찬 : 응, 나쁜 아이를 착하게 만들어 주는 발명품.

엄마 : (의아해 하며) 누굴 착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세찬 : (의기양양하게) 영수!

하루 종일 열심히 뛰어 다니느라 열매를 힘들게 만들었던 영수가 세찬이 눈에는 나쁜 아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2009년 6월 28일

엄마, 아빠, 오빠랑 백화점에 간 윤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기 직전.

윤채의 안전벨트는 항상 엄마만 풀어 줄 수 있다. 아빠가 풀어 주는 것을 무슨이유인지 윤채는 너무 너무 싫어한다. 이날도 역시 아빠가 윤채의 안전벨트 한 번 풀어주려고 한껏 긴장한채 미소를 띠며 윤채에게 다가간다. 엄마랑, 세찬이도 윤채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런데...

윤채가 오늘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빠 : (살짝 눈치보며 윤채가 앉은 쪽의 문을 열고) 자, 내리세요.

윤채 : (웃으며 아빠를 바라본다) 자기야!!! 나 자기가 좋아지려고 해.

아빠, 엄마, 세찬 : 허걱!

그렇게 순식간에 나의 자기는 윤채의 자기가 되어버렸다.

 

2010년 3월 19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의 대화

세찬 : 윤채야 우리 말놀이 하자. 내가 먼저 문제 낼게. 맞춰봐.

윤채 : 그래

세찬 : 이건 ‘이’자로 시작해. 이건 이름이야. 말을 되게 안들어.

윤채 : 으음. 알았다. ‘이녀석!’

세찬 : 응? 이윤챈데.... 그럼 이거 맞춰봐.

이번엔 ‘데’자로 시작하는 거야. 앞에서 막 기타를 두드려. 그러면 우리가 막 춤을 춘다. 뭐게?

(세찬이의 의도는 두들기타를 가르쳐 줬던 ‘데자부’였다)

윤채 : 으음. ‘대~리~ 운전!’

엄마 : 하하하하하! 대박이다.

 

 

 

2010년 2월

 

반쪽과 함께 뒤 끝 없는 성격의 윤채를 보며 “윤채는 참 쿨해” 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듣고 있던 세찬이가

세찬 : 엄마 ‘쿨’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엄마 : 응~ 그건 멋지다는 뜻이야.

세찬 : 아~~

 

그리고 며칠이 지나 우리 식구는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

유난히 시식이 많았던 탓에 배가 고팠던 윤채와 세찬이가 시식만으로도 배가 불렀을 즈음 스파게티 시식 코너에서 작은 종이컵에 스파게티를 담아 주길래 윤채와 세찬이에게 먹으라고 들려 주었다.

둘이 카트에 앉아 스파게티를 맛나게 먹으면서 대화 중이다.

세찬 : 윤채야! 이거 정말 맛있다. 그치?

윤채 : 응~

세찬 : 엄마, 그런데 왜 저 아줌마는 스파게티를 이렇게 많이 줬어?

엄마 : 응, 윤채랑 세찬이 배고픈 것 알고 많이 먹으라고 주셨나 보다.

세찬 : (씨익 웃으며) 윤채야, 저 아줌마 정말 ‘쿨’하다 그치!

윤채 : (열심히 컵에다 코를 박고 먹으면서) 응~~ 쿨해. 쿨해.

 

 

2010년 4월 5일

 

어느 날 길을 걸어가던 윤채가 기분이 좋았는지 쫑알쫑알 수다를 떱니다.

 

“엄마 내가 꿈을 꿨는데 엄마, 아빠를 잃어 버린 거야. 그래서 아저씨한테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좀 찾아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우리 아빠 좀 찾아 주세요.

했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엄마, 아빠 전화 번호가 뭐니? 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 전화 번호는 아빠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우리 아빠 전화 번호는 엄마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했다”

 

띠요용~~~

 

이름 석자, 전화 번호 11자리 대신 단축 번호로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

 

 

문득 나는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7개가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 바뀐 어머니의 전화번호는 아예 까맣게 모르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전화기에 하나의 단축 번호로 저장되어 있겠지.

그도 아니면 기타 그룹 어느 한켠에 쳐박혀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긴장되면서 서글퍼 진다.

지인의 전화기에 가장 중요한 번호로 자리 잡고 싶은 욕망!!!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전부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손 때 묻은 가나다라 순 전화번호부가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게 될까?

아님 바코드를 저장하고 다닐지도....

 

 

 

 

2010년 4월 어느날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 던 윤채가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윤채 : 엄마, 엄마 모경이 언니는 정말 나쁘다. 나한테 막 ‘야’라고 해.

진짜 나쁘지?

엄마 : 그래? 그런데 모경이는 윤채보다 언니니까 그렇게 불러도 돼.

윤채 : 아니야, 내가 왜 ‘야’야! 나는 윤채니까 윤채라고 불러야지.

엄마 : 아....그렇구나. 넌 윤채지. 맞다. 윤채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윤 채라고 불러야 겠다. 우리 윤채, 정말 기분 나쁠 만도 하겠다.

 

가끔 나도 모르는 사이 급하게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할 때 ‘야’라는 말을 쓸 때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한 말투로 부를 때는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2010년 4월 10일

 

인혜 부부와 저녁을 먹고 돌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5학년인 쌍둥이 딸을 캐나다에 보내 놓고 뒤 늦게 신혼처럼 살고 있는 인혜부부가 조금은 부러웠다.

신랑 : 둘이서 재밌게 잘 살고 있네.

나 : 그치? 보기 좋지. 우린 언제 애들 다 키워서 떼놓고 우리끼리 오손 도손 사냐.....

 

가만히 뒤에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우리도 같이 좀 살자. 살어!

신랑, 나 : (순간 너무 놀라 마주보다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만다) 우하하하하

 

그래, 우리는 한 가족이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하지만 가끔 엄마는 아빠랑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단다.

미안해.....

 

 

2010년 4월 19일

 

한참 TV시청에 열을 올리던 윤채가 내게 물었다.

윤채 : 엄마 ‘정의’가 뭐야?

엄마 : ‘정의’ 음~~뭐라 할까?

세찬 : 나는 ‘정의’가 뭔지 아는데...

엄마 : 세찬이가 알고 있었어? ‘정의’가 뭔데?

세찬 : (씨익 웃으며) 지구를 지키는 게 바로 ‘정의’야.

엄마 : 맞다! ‘정의’란 바로 지구를 지키는 거다.

 

그래 세찬아 네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정의’가 살아 있다면 이 지구도 참 아름답게 지켜지겠지?

세찬이는 정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지구를 지키는 데 한 몫 하는 일꾼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세찬이가 좋아하는 파워레인져처럼........

 

2010년 4월 22일

 

세찬 : 이윤대, 이윤대!

엄마 : 세찬아, 왜 윤채를 자꾸 윤대라고 불러?

세찬 : 응, 옛날에 피터팬아저씨가 왔을 때 윤채가 비더밴이라고 불러서 내가 피터팬 아저 씨한테 이윤채를 이윤대로 부르라고 했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세단아, 세단아!

 

이름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보는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 살짝 아리송한 이름표 글씨 때문에 홍성매로 불렸던 적이 있었는데....

가끔 봉봉이 불러 주던 그 이름이 오늘따라 자꾸 귓가에 맴돈다.

 

 

2010년 6월 2일

 

국민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투표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헤이리를 찾았다.

프로방스와 딸기마을을 거쳐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세찬이와 윤채가 대화를 한다.

 

윤채 : 나 여기 외할머니랑 와 봤었어.

세찬 : 네가 언제 여기 할머니랑 와 봤냐? 할머니는 운전도 못하는데....

윤채 : 아니야. 외할머니랑 여기와서 놀다 집에 갔었어.

세찬 : 윤채아...지금 네가 상상력을 발휘하는거냐?

순간 침묵

 

엄마 : (반쪽을 쳐다 보며) ㅋㅋ 저 조그만 입에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놀 랍다. 그치?

 

 

 

2010년 6월 8일

 

퇴근해서 집에 돌아 오는 차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세찬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세찬 : 엄마!

엄마 : 응~~

세찬 : (힘 없는 목소리로) 나...윤채 오빠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 : (너무 놀라서...그러나 사실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해 봤음)왜?

세찬 : 윤채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막 때리고 자꾸 내 장난감을 가져가...

 

엄마는 세찬이의 고민이 무척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왜 안 그럴까? 나도 가끔은 윤채가 벅찰때가 있는데....백미러로 뒤에 앉은 윤채의 표정을 살핀다.

 

윤채 : (모르는 척, 방금 오빠한테서 빼앗은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엄마 : 세찬아! 하지만 이미 윤채는 세찬이의 동생으로 태어 났는 걸.

그건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가 없어.

세찬 : (깊이 고개 숙이며) 그래도 너무 힘든데...

윤채 :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늘 세찬이에게 동생을 보호해 주고 아껴주라고만 했다.

그동안 내색은 안했지만, 제 한 몸 지키기 힘든 6살 어린 아이에게 그런 임무는 세상을 다 짊어 진 듯 너무 힘들기만 했던 모양이다.

 

2010년 7월 어느 날

 

엄마에게 있어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

열심히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윤채가 소파 등받이 위에 위험하게 올라가 있다.

 

엄마 : (열심히 바닥에 앉아서 걸레질 하며) 아유, 지지배.... 거길 어떻게 올라갔니?

윤채 : (큰소리로 우하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참기름 바르고 올라왔지!!!!

엄마도 올라와 봐라!!!

 

그래, 네 눈엔 밑에서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는 엄마가 호랑이로 보였던 모양이구나...

당장 내려 오지 않으면 잡아 먹는다! 크앙~~~

 

 

 

2010년 8월 3일

 

 

요즘 일주일에 두 번 하마방에 오는 승호 형 승주가 아이들을 조금 괴롭히는 모양이다.

 

세찬 : 엄마! 또 승주가 미래랑 하연이랑 윤채를 괴롭히길래 내가 ‘너도 네 동생 괴롭히면 기분 좋냐?’ 라고 했어.

엄마 : 그래, 잘했네...계속 그렇게 얘기해 주면 승주도 금방 알아 듣고 잘 지낼꺼야.

세찬 : 그런데 승주가 ‘너, 나랑 결판내자!’ 그러는 거야!

엄마 :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세찬 : 난 그런 거 없으니까 너나 내라고 했어. 그런데 엄마. 결판이 뭐야? 난 그런거 없는 데...

엄마 : 음~~~~(진땀)

호두가 보고 싶다.

호두야 TT

잘살고 있니...

우리 호두 왕자님되서 반지르르 잘살고 있니 TT 흑흑...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100726

오늘은 인셉션 보고 자는 것이 하루종일의 일정이었습니다. 띵까띵까.

인셉션 보면서 아이 가슴떨려하는 것이 잠자면서도 나타났습니다.

총 쏘는 소리에 벌떡 깨지 않나...훼훼훼훼훼훼

참 침투하기 쉬운 것이 지금 나의 맘인가 봅니다...훼훼훼훼훼훼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단어

천박한 시대

 -88만원

 -부끄러움을 아는 것

 -공동체의 상실

 -천개의 고원

 

일상성

 -자기성장 vs 자기발전 vs 자기 고용

 

연어집단

 -앎을 통한 독립적인 공간 구축->자존감

 

 

얼마전에 왕양이 배움그룹(?)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반이다 팀을 보면서 우리 집 한칸을 작업실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어제와 오늘의 행보

 

어제 토요일 수지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 갔다.

연대생들과 담이 참여하고 있는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그쪽으로 한달동안 인턴을 간다고 해서 나도 졸졸 따라간다고 이야기 한 것이 어제가 되서야 지켜졌다.

성미산마을 못지 않은 마을의 분위기에 한껏 기분좋아져서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왔다.

200여명이 되는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아이들, 어른들 할 것없이 밤 늦게까지 책보고 놀고 영화보고 시 읽고. 참으로 어여쁜 장면들이 이어졌고 때문에 잠을 쉬 들 수가 없었다.

만화 닥터 노구찌, 영화 개청춘(개청춘을 보고 나서 인턴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박터지는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개청춘의 문신한 청년은 역시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몇마디 오고 간 뒤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난 그들이 소위 스카이라인에 들었기 때문에 할말이 없는 것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왕양과 금산과 뿡이와 리사가 이리 절실할 줄이야 TT)), 요시노 이발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간다(한 세번째 보는데 역시나 엔딩장면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우에노 주리의 스파이 행보는 마지막까지 잘 지켜진 듯 하다) 를 주구장창 보다가 여섯시 넘어서 슬쩍 빠져나왔다.

 

 

집에와서 잠깐 잠을 청한뒤

등산친구 동현오빠를 만나 인왕산에 올랐다.

관악산보다 훠얼씬 길도 잘닦여 있고 고도도 낮아서 슬렁슬렁 갔다가 내려오기 딱 좋은 산이었다.

내가 스르슥슥 힘 넘치게 산 올라가자 동현오빠 하는 말이

 이십대 때는 생각없이 올라가고 삼십대 때는  사십대 때는 내려갈 때를 생각하면서 올라가게 된대

 근데 힘든데 뭔 생각을 하냐

 

 

 아 먹고 싶다는 건 아닌데 홍제동에 진짜 맛있는 순대집 있어요.

 라고 하자 오빠가 장난치듯 대답했다.  어 그래? 혼자가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겨울에 한번 더 인왕산 와서 내려갈 때 순대국 먹고 가요. 라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난 왜 기약없는 약속이 좋을까.

 

 

(산에서 내려와서는 설레임을 사서 쭉쭉 빨면서 지하철까지 내려갔다.)

 

산줄기 떨어지는 곳이 홍제동이라 삼치와 어머님 생각이 났다.

삼치에게 전화를 했다.

 나 간다

 -어디?

 니네 집에

 -왜? 지금 어딘데?

 너희 집 맥도날드 앞에

  -그럼 나 나간다.

 그럼 나 안가.

  -ㅋㅋ 알았어.

라는 정내미 떨어질법한 전화를 한뒤

 

동현오빠 먼저 보내고

나는 커피 싸들고 정겨운 삼치집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찾아온 나를 보고 어머님은 실실 웃으시며 뭐야? 이거. 라며 반겨주셨다.

 

 

나 대신 먼저 와있는 춘봉여사.

(어여쁜 길냥인데 가끔 삼치집에서 신세를 진다고 한다.)

 

오랫만에 어머님 아버님 뵈서 기분이 좋아 깐풍기 세트+짬뽕 두개를 쐈다.

 고추장 좀 담아주랴? 라고 하는 어머님의 말씀에 냉장고에 몇년째 쳐박혀 있는 순창고추장이 떠올라 손치레를 치며 나왔다.

 

이틀동안 생각지 않게 좋은 사람들 만나 배부르고 따시게 잘먹고 팽팽 놀며 주말을 보냈다.

아이 좋아라.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하자에서 있었던 [심신보양잔치] 기획 2팀과 10분 급조 공연을 했습니다.

오글거림이 컨셉인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심은 보양되었으나 신은 보양 안되네요.

초계탕을 먹어도 힘 안나요.

에어콘은 8월 2일에야 도착....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공부도 못하는 XX가 건방지게..." (오마이뉴스)





넘어진 학생에게 발길질을 하는 오아무개 교사.


ⓒ 평등학부모회제공


최근 서울 모초등학교 교사의 체벌 동영상을 접한 대다수 학부모들의 근심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체벌에 대한 금지와 폭력 교사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서울교육청은 20일 체벌 전면 금지 정책을 전격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체벌 금지 정책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심지어 인천 교육청서울 교육청의 금지 정책과 달리 '체벌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는가 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교총은 "체벌 금지가 교사들을 교육적 방관자로 머물러 있으라고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교과부는 "체벌 금지는 초중등교육법과 충돌하고 학교규칙 제정에 상당부분 자율권을 가진 교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법리적 해석까지 내놓았다. 이쯤 되면 체벌 금지 정책을 내린 서울교육청이 대단히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이걸 체벌이라고 하나? 구타라고 해야 하나?

80년대 초반에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미혼이었는데 체육 담당 선생님답게 체구가 당당했다. 그리고 키가 140센티미터도 되지 않은 우리반 아이들은 매일 같이 체벌에 시달렸다.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자기 책상 주변에 종이 쪼가리 하나 떨어져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도 아니면 종례시간에 들어서는데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 그 당시 선생님이 사용한 무기는 박달나무로 만든 하키 스틱이었다. 학교에서 육성한 체육부가 하키부여서 하키 스틱이 늘 체육실에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 맞으면 그 여린 엉덩이가 크게 출렁거렸고 두 대를 맞으면 감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맞았고 하루 하루를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보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불과 14살의 어린 아이에 불과한 우리들을 선생님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때렸을까? 정말 우리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것일까.





체벌하는 교사. 영화 < 투사부일체 > 의 한 장면.


ⓒ (주)시네마 제니스


그 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정말이지 많고 많은 체벌의 기억이 있다. 1교시도 시작하지 않은 조회 시간, 선생님은 칠판 아래 책상을 놓으라고 한 후 반 아이 모두에게 차례로 올라가라고 했다. 대걸레 자루를 발로 내질러 분지른 후, 담임 선생님은 마구 때렸다. 그렇게 학급 학생 모두를 5대씩 때리자 우리 반 대걸레 자루 3개가 부러졌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선생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는 것 외에.

그 후에도 선생님은 아침에 술냄새가 나면 종종 그렇게 이유 없이 때렸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소위 '양담배 사건'이었다.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양담배가 수입 개방되었다. 그러자 당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양담배 소비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그런데 마침 당시 과목 담당 선생님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양담배가 비춰 보였다.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양담배 태우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민망한지 처음엔 선생님이 웃으며 "뭘 그런 걸 말하냐"고 했다. 아이들이 따라 배시시 웃었다. 상황은 그 후에 돌변했다. 갑자기 지적한 학생을 나오라고 하더니 느닷없이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었다.

"공부도 못하는 XX가 어딜 건방지게... 내가 담배를 피우던 말던 네가 뭔데 참견이냐. 너 이 XX. 담배 피지? 그러니까 양담배인지 아닌지 알지." 등등등. 양담배를 지적한 학생은 처참하게 맞았고 피를 흘리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묻고 싶다. 이것이 체벌인지, 아니면 폭력인지. 그 선생님은 지금도 현직에서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체벌에 숨어있는 차별의 요소





매질을 해도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고, 매질을 하지 않아도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매질은 필요 없습니다. (사진은 영화 < 말죽거리잔혹사 > 의 체벌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진정한 교육은 체벌을 통해 만들어질 수 없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 정신적 교감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체벌은 어른의 완력으로 이뤄지는 구타 행위일 뿐이다. 더구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체벌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제지간에 높은 신뢰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체벌을 고집하는 대부분의 교사들을 신뢰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오늘도 잘못하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지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구나 체벌은 필연적으로 차별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맞는 아이가 따로 있고 같은 매를 맞아도 강도가 다르다고 주장하면 주관적일까.

다시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 재학 당시의 일이다. 한 아이와 다투게 되었다. 상대방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실내화를 바꿔신는 나의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후 한 덩어리가 되어 흙바닥에서 엉켜있는 것을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나는 상대방 아이가 이유없이 머리를 때렸다고 일렀다. 하지만 상대방 아이는 정말이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도 못했다. 곧이어 처벌이 내려졌다. 선생님은 지나가는 아이가 들고가던 알루미늄 쟁반의 둥근 바닥면으로 상대방 아이 머리를 '쟁반 노래방'의 그것처럼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한 대 때렸다. 그 다음 차례는 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었다. 같은 처벌일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선생님은 쟁반을 세우더니 각으로 아무지게 한 대 때렸다.

어이가 없었다. 울었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 울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떠 오르지 않았다. 그 아이 아버지가 큰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우리 학교 학부모회 회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내가 당한 차별을 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서럽던 기억은 삼십 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 딱지다.

학생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체벌은 군대의 얼차려처럼, 자백을 요구하기 위한 경찰의 고문처럼 없어져야 할 야만적인 문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면 필자는 원칙적인 답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 학생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교사는 이러한 실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교육은 실수하는 아이를 다시 세우는 반복 행위이며 교사와 부모는 실수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무한 책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체벌을 배제한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내 아이가 맞는 것은 안 되면서 일반적인 체벌은 필요하다는 이중적인 학부모의 자세를 이번 기회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제각각 학부모인 교사들도 손쉬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제압하는 체벌의 유혹을 끊고 아이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진지한 고민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향기나는 문구가 교육현장에서는 왜 안 된다고만 하는가? 서울 교육청의 체벌금지 정책이 반드시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100721

밤.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

한 남자가 씨발씨발 거리면서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제법 큰 목소리로 혼자 궁시렁거렸다.

 

 아 씨발 내가 분명히 아까 오전에 계산을 했단 말야

 분명히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는데 만원이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아 씨발 어디간거지

 

말 끝마다 씨발이라 듣고 있는 내가 불쾌해질 정도였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내용이었다.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다면 물건이 오천원이란 이야긴데

오천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누가 이만원을 내냐는 거다. 만원내고 오천원 거슬러 받지.

아무튼 그 말만 계속 되풀이 하는 모습이 꼭 광인일기의 주인공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상황을 보면서

(꼭 씨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도 표정으로 씨발을 외치던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p.83)

 -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속에서 불이 타는 것과 같단다. 화는 불이야. 화를 내는 사람은 불타는 화로와 비슷해. 불은 땔감이 있어야 타지. 난로에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결국 꺼지잖아? 사람이 내는 화도 마찬가지야. '생각'이라는 땔감을 계속 넣어주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식게 돼 있어. 화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다른 감정들(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이 다 그래.

  ... 중략 ... 화는 불이고 그 불을 타오르게 하는 땔감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네 '생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두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