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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7일 금요일

물값이 6만 3천원이 나왔다.

밀렸던 생활비까지 합치면 15만원이나 된다.

속이 뒤틀려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잤다.

마사지 티켓 지르지 말 것을 그랬다.

지금도 수도꼭지는 정신나간 소가 침 질질 흘리는 것 마냥 물 뚝뚝 흘리고 있겠지.

2010년 8월 26일 목요일

내 심장은 붉다.

널 보면 고 붉은 것이 복어처럼 부풀어오른다.

팔딱팔딱 튀어오르는 것은 꼭 괴기 아가미.

뜨겁게 흐르는 - 머리 휘감고 다시 돌아 온 푸른 피.

아가미에서 슬금슬금 베어나오는 것은 비린내.

비린내 안에 기억하려해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은 냄새.

보송한 빨래더미에 굵게 자라난 사과나무.

그곳에 흐르는 달콤한 사과즙.

 

널 만날 때면 복어괴기아가미비린내사과즙에 머리는 자지러진다.

 

-

 

너에게서 벗어나려고 콩

자석에 이끌리듯 딱

콩딱

콩딱

콩떡

떡콩

결국은 콩고물.

어디 너한테서 콩고물 하나 안떨어지나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콩딱콩떡 내마음.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일기

열두시 전에 침대에 누웠는데 계속 말똥말똥

한시간정도 누워있다가 수면유도음악틀고 누웠는데도 계속 말똥말똥

물 벌컥벌컥 마셔도 TT 몇 일째 이런다.

오늘도 두시간째 잠을 못들어서 결국 일년만에 수면유도제를 다시 들었다. 다행히 한 알이 남아있었다. 예전엔 두알씩 먹었었는데 한알로 되려나 모르겠다. 내일 비상용으로 더 사둬야겠다.

사실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정신은 멀쩡한데 다리부터 무거워지는 것이 아주 불쾌하다.

게다가 중간에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던데...

좀 푹 잤으면 좋겠다.

왜 잠을 못자는 걸까?

시원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일이 찝찝했기 때문일까.

-

호두 생각이 난다.

호두가 없어서 그런지 못해준 일만 새록새록

더 간식 사주고 더 쓰다듬어 줄 것을 그랬다.

이리 저리 팔랑팔랑 헥헥헥헥 온곳을 쏘아다니며 즐겁게 지내면 좋을텐데.

호두 보고파라.

-

일년전 녀자들 생각도 난다.

하짱 생각도 난다.

촌닭들도 생각난다.

보고파라.

윽 밤의 넋두리는 처량하군.

-

슬슬 무거워지네. 자러가야지.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100726

오늘은 인셉션 보고 자는 것이 하루종일의 일정이었습니다. 띵까띵까.

인셉션 보면서 아이 가슴떨려하는 것이 잠자면서도 나타났습니다.

총 쏘는 소리에 벌떡 깨지 않나...훼훼훼훼훼훼

참 침투하기 쉬운 것이 지금 나의 맘인가 봅니다...훼훼훼훼훼훼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어제와 오늘의 행보

 

어제 토요일 수지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 갔다.

연대생들과 담이 참여하고 있는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그쪽으로 한달동안 인턴을 간다고 해서 나도 졸졸 따라간다고 이야기 한 것이 어제가 되서야 지켜졌다.

성미산마을 못지 않은 마을의 분위기에 한껏 기분좋아져서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왔다.

200여명이 되는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아이들, 어른들 할 것없이 밤 늦게까지 책보고 놀고 영화보고 시 읽고. 참으로 어여쁜 장면들이 이어졌고 때문에 잠을 쉬 들 수가 없었다.

만화 닥터 노구찌, 영화 개청춘(개청춘을 보고 나서 인턴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박터지는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개청춘의 문신한 청년은 역시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몇마디 오고 간 뒤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난 그들이 소위 스카이라인에 들었기 때문에 할말이 없는 것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왕양과 금산과 뿡이와 리사가 이리 절실할 줄이야 TT)), 요시노 이발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간다(한 세번째 보는데 역시나 엔딩장면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우에노 주리의 스파이 행보는 마지막까지 잘 지켜진 듯 하다) 를 주구장창 보다가 여섯시 넘어서 슬쩍 빠져나왔다.

 

 

집에와서 잠깐 잠을 청한뒤

등산친구 동현오빠를 만나 인왕산에 올랐다.

관악산보다 훠얼씬 길도 잘닦여 있고 고도도 낮아서 슬렁슬렁 갔다가 내려오기 딱 좋은 산이었다.

내가 스르슥슥 힘 넘치게 산 올라가자 동현오빠 하는 말이

 이십대 때는 생각없이 올라가고 삼십대 때는  사십대 때는 내려갈 때를 생각하면서 올라가게 된대

 근데 힘든데 뭔 생각을 하냐

 

 

 아 먹고 싶다는 건 아닌데 홍제동에 진짜 맛있는 순대집 있어요.

 라고 하자 오빠가 장난치듯 대답했다.  어 그래? 혼자가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겨울에 한번 더 인왕산 와서 내려갈 때 순대국 먹고 가요. 라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난 왜 기약없는 약속이 좋을까.

 

 

(산에서 내려와서는 설레임을 사서 쭉쭉 빨면서 지하철까지 내려갔다.)

 

산줄기 떨어지는 곳이 홍제동이라 삼치와 어머님 생각이 났다.

삼치에게 전화를 했다.

 나 간다

 -어디?

 니네 집에

 -왜? 지금 어딘데?

 너희 집 맥도날드 앞에

  -그럼 나 나간다.

 그럼 나 안가.

  -ㅋㅋ 알았어.

라는 정내미 떨어질법한 전화를 한뒤

 

동현오빠 먼저 보내고

나는 커피 싸들고 정겨운 삼치집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찾아온 나를 보고 어머님은 실실 웃으시며 뭐야? 이거. 라며 반겨주셨다.

 

 

나 대신 먼저 와있는 춘봉여사.

(어여쁜 길냥인데 가끔 삼치집에서 신세를 진다고 한다.)

 

오랫만에 어머님 아버님 뵈서 기분이 좋아 깐풍기 세트+짬뽕 두개를 쐈다.

 고추장 좀 담아주랴? 라고 하는 어머님의 말씀에 냉장고에 몇년째 쳐박혀 있는 순창고추장이 떠올라 손치레를 치며 나왔다.

 

이틀동안 생각지 않게 좋은 사람들 만나 배부르고 따시게 잘먹고 팽팽 놀며 주말을 보냈다.

아이 좋아라.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하자에서 있었던 [심신보양잔치] 기획 2팀과 10분 급조 공연을 했습니다.

오글거림이 컨셉인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심은 보양되었으나 신은 보양 안되네요.

초계탕을 먹어도 힘 안나요.

에어콘은 8월 2일에야 도착....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100721

밤.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

한 남자가 씨발씨발 거리면서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제법 큰 목소리로 혼자 궁시렁거렸다.

 

 아 씨발 내가 분명히 아까 오전에 계산을 했단 말야

 분명히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는데 만원이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아 씨발 어디간거지

 

말 끝마다 씨발이라 듣고 있는 내가 불쾌해질 정도였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내용이었다.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다면 물건이 오천원이란 이야긴데

오천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누가 이만원을 내냐는 거다. 만원내고 오천원 거슬러 받지.

아무튼 그 말만 계속 되풀이 하는 모습이 꼭 광인일기의 주인공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상황을 보면서

(꼭 씨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도 표정으로 씨발을 외치던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p.83)

 -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속에서 불이 타는 것과 같단다. 화는 불이야. 화를 내는 사람은 불타는 화로와 비슷해. 불은 땔감이 있어야 타지. 난로에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결국 꺼지잖아? 사람이 내는 화도 마찬가지야. '생각'이라는 땔감을 계속 넣어주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식게 돼 있어. 화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다른 감정들(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이 다 그래.

  ... 중략 ... 화는 불이고 그 불을 타오르게 하는 땔감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네 '생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두는 게 좋겠다.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100718

동생과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서울 산지 십년 가까이 되지만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발 디뎌보지도 못했다. 사실 박물관이나 수족관 같은 것에 콧방귀 뀌며 살았다. (디자인전은 물론 흥미롭지만.) 너무 죽은지 오래되어 그 의미가 희미해진 것이나,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 그 의미가 희미해진 것들은 별로 보러가고 싶지 않았다.

 

한 십분 정도 지났을까

동생은 한 오분만에 한 장소 다 돌고 때 마다 "에이 재미없어 다봤어 갈래" 를 남발하는 한편

나는 "이게 도대체 뭐시다냐" 하며 눈이 휘둥그래져서 수족관에 얼굴 들이밀다시피 하면서 구경했다.

 

멸치때에서는 음마 저게 내가 먹던 멸치가 맞는거시여?....

거북이 볼때는 우왕ㅋ굿ㅋ 거북이 짱 잘 헤엄쳐

매너티 양배추 먹을 때는 TT우적우적 잘도 먹는다

불가사리 만질 때는 꺄악

상어 볼 때는 수컷인지 암컷인지 하나하나씩 정밀하게 관찰하고

촉수 긴 해파리 앞에서는 한 오분간 넋놓고 앉아있었다.(속으로 이아이들의 촉수가 엉키면 짤리거나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며 엉킨 촉수를 어떻게 푸는지 지켜보았다.)

 

나 혼자 너무 재밌게 봐서 동생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돌아오는 버스길에서는 우리 둘다 파무침이 되어 코골며 잤다.

100717

요 몇일간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 했더니 생리 기간이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마냥 비가 억수로 쏟아 내렸다.

열시간은 자고 싶었지만 약속이 빼곡하여 무거운 엉덩이를 질질 끌고 나왔다.

빗물에 발이 허옇게 뿔 것 같아 고무 쪼리를 하나 장만했다.

고무 쪼리가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참 신통방통하다. 버스에 앉아있으면 오분만에 마르니 빗물 속에 있어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덕분에 오늘 쌩쌩 잘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동생과 고깃집에 갔는데 맛이 썩 좋지가 않아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참에

앞테이블에 꼬마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는 부모님과 외삼촌으로 뵈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

아이가 아빠 얼굴에 손을 착 갖다 대면서 하는 말이

아빠 감기 걸렸나봐 얼굴이 빠알갛고 지인짜 뜨거워

정말 보니 얼굴이 벌게서 터지기 일보직전의 빨간 풍선 같았다.

 

아이의 말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아빠 얼굴 한번 그려줄래? 하면 걸작 하나 나올 것 같았다.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2010년, 스무 살이 되는 나르샤를 보며 예순 네 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내가 만약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1.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2. 스무 살이 되도록 별 탈 없이 살아 있는 것을 고마워하겠습니다.

3. 스무 살이 되도록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들에게 고마워하겠습니다.

4. 나와 함께 놀아 준 친구들을 고마워하겠습니다.

5.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6. 잘난 친구를 시샘하지 않겠습니다.

7.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의미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8. 불안을 젊음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9. 하루에 단 몇 페이지라도 좋은 책을 찾아 읽겠습니다.

10. 하루에 한번 씩은 꼭 하늘을 쳐다보겠습니다.

11.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12. 모든 생물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13.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아내겠습니다.

14. 내가 먹을 밥은 내가 번다는 생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15. 일이 안될 때 남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16.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17. 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18. 가능한 한 한 여행을 많이 하겠습니다.

19. 악기 하나를 꾸준히 익히겠습니다.

20. 편견에 사로자히지 않도록 늘 마음을 열어 두겠습니다.

 

-

지난 오월 나의 스무살 됨을 축복해주며 예순 네 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보내준 축사-편지-당부말이다.

사리같은 스무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스로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씨앗들이 마음에서 자랐을 때가 내가 중학생 소녀였을 때었던 것 같다. 그 씨앗이 적재적소의 시기에 싹을 틔운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와 힘을 합해 싸워본 것, 학교를 자퇴한 것, 하자에 온 것, 멋진 어른들을 만난 것, 멋진 할머니들을 만난 것, 멋진 친구들을 만난 것, 멋진 공간을 만난 것. 자원 이상의 자원이 넘쳐나는 하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 그리고 이제 막 청년기가 된 이 순간에도 그런 만남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러면서 때마다 이런 가슴벅찬 블레싱을 받을 수 있는 것. 다른 것이 행복이 아니다.

 

성년이 된지 두달이 다 되어간다. 어제는 내가 십대 때 쓴 글쪼가리들을 읽어 보았는데 그 때가 더 현명했던 것 같기도 하다. 히히.

서른까지 잘 살아보련다.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일하며 멋진 사람들과 시너지 나는 작업들을 하고 싶다.

100715

느긋히 저녁을 보내고 있다보니, 대학 같은 과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다음 주 주말에 시간있니?

자기 손해 볼 짓 안할 사람이라 무슨 꿍꿍이인가 궁금하여

 무슨 일이세요?

물어보니

 응 오빠랑 친한 사람끼리 여행가려구.

 

같이 대동할 사람들 이름 읊어주는 것을 들어보니 지난 학기 팀을 만들어 부정시험 친 그 무리들이었다.

더 첨가된 사람이 있다면 지난 학기 혼자 공부해서 A+ 받았다고 소문자자한 그 소녀.

 

친한 사람끼리 즐거이 여행가자는 게 아니라 부정시험에 도움 될 사람을 지 편으로 만들려는 거겠지.

 

치졸한 인간은 파벌을 만들고

현명한 사람은 은인을 만든다.

 

에라이 퉤퉤

 

아침에 들렀던 홈플러스에 천연 치클 껌이 있었다.

단순히 통이 예쁘다는 것에 홀려 생애 처음으로 이천원짜리 껌을 씹어보았는데

역시 싸구려 고무 이용해 만든 오백원짜리 껌이 훨씬 속편하다.

더 편해 지려면 물 한통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 낫겠다.

 

오후에는 내가 문자를 어떻게 보내야 좋겠는지 옛정 어린 삼치에게 물어보자

나보고 매력없는 찐득거리는 여자란다.

이게 나인걸 어쩌누 아 찐득거리는 연애하고 싶다.

생각하다가 어쩌면 당분간 연애는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가엽게 여기는 마음 : 측은지심

을 갖어라 조한은 말하였지만
내가 왜 그를 불쌍히 여기는지는 모르겠네요.
이런 암묵적 동의 같은 생각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위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증거를 찾거나 빨리 없애는 것이 좋을 듯.

2009년 9월 1일 화요일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1>

히옥스의 추천에 읽게 된 엄기호씨의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강남 교보문고에 갔더니 E0-23 (놀라서 기억하고 있다.) '혁명' 카테고리에 있더라.

뭘까하고 읽으니 불순하기 짝이없는 책이다.

 

이제막 공부하려는 아이라 신자유주의를 보는 학자들의 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근대국가는 기본적으로 자국의 영토 안에서 국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은 모두 다 동등하게 대하겠다는 것을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다."

라는 그의 작업노트를 읽으면서 사유의 범위가 나, 나의 옆, 나의 마을 뿐 아니라 나의 나라로 곧장 직설적으로 꽂일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자존감 넘친단말야.)

 

p8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은 예외적인 극히 일부만 탈락하고 망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언제든 예외가 되어버리는 그런 시대이다. '누구나 예외'라는 이 처참한 덫으로부터 벗어나 '예외의 예외'가 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사람들은 인생 한 방을 노리고 로또를 긁거나 부동산 투기를 한다. 현실은 이미 나의 문제로 바싹 다가와 있는데도 신자유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라.'라고 교묘하게 자신을 속이도록 만들고 있다.

 

p25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펼쳐내는 일련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개인과 가족, 사회의 경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수성도 통째로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인간의 권리는 인간의 의무로 교묘하게 바뀌었고, 노동은 자기 관리의 문제,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경영의 문제로 바뀌었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고 순간적이고 소비적인 관계로 대체되었으며,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져야 하는 주권과 시민권은 능력에 따라 차등을 두어 들쭉날쭉하게 나누어졌다.

 

 

그래

사실대로 말하면

나 로또 5번은 산것 같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나는 참 교묘하고 간사하게도

사람들의 생명들의 인권, 자유를 위해 있고 싶지만

내가 마이너기질을 갖고 있거나 아웃사이더가 되기는 싫다.

아직 인간이 못된 덕이냐.흥.

 

딱 1페이지를 읽고 엄기호씨가 무슨 이야기(->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상위층이 아닌 이상 모든 이들은 도야.) 를 할지 알자

돈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 무엇의 문제도 아닌

내가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부렀당께롱.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무제

안그래도맘이이상하던참이었다.김대중전대통령의서거소식은작년이맘때쯤그녀의백일제향기를다시불러일으켰다.
공연을두탕뛰고사무실로들어오니팀원들이나에게그의소식을묻는다.
연락도안되고출근도안된단다.
핸드폰으로전화를해봤다.몇번신호가가다가꺼진다.
가슴이철렁했다.뭔가이상하다고생각했다.
집으로전화했다.조급함이느껴졌다.
그의엄마가전화를받았다.
얼떨결에안무도묻지못하고대뜸물었다.
 종희오빠어디있어요?
 죽었어.



으아아

모든것이아득해졌다.난정말너가죽었다고생각했다.오늘은웬지그럴만한날이라는기분이들었다.
역시아까부터기분이이상했던건이때문이었을거야.
작년그녀를떠올리며고통스러워했던것처럼마지막으로너가지었을표정이이미지화되었다.
저기저기저기깊은곳에서
까맣게알갱이처럼남아울던카나리아가부풀어올라터져나왔다.

나는정말아무생각이들지않았다.그냥울었다.너무절박했다.
터져나오는울음때문에낑낑거리며
 거짓말이죠? 어머니? 거짓말하지마세요.
 진짜야. 그새끼죽었어.

세번을물은뒤에야 그놈죽을만큼아파 라는 말을들었지만그럼에도나는안심할수없었다.진짜죽으면어떻해라는생각.병원에너가깁스를하고누워있는것은아닌지,너가암에걸린것인지,너가어디서떨어진것인지.

나정말앞뒤없이사람들다보는데엉엉울었어.부끄럽다고생각할수도없었다.내몸의눈과귀만감지되었다.귀에서는자꾸너의목소리가맴돌고눈에서는자꾸닭똥같은눈물이나왔다.
얼마뒤에그나마어디가죽을정도의일은아니라는것을알게되었지만나에게는-특히나내안의카나리아에게는-굉장히충격적이었나보다.그전화후삼십분을내리울었다.
머리로는네가죽지않은줄알고있었지만울음을멈출수없었다.울면서도나의카나리아가결코작지않은것에놀랐다.너를만난것이오년전.우리헤어진지삼년.사실머릿속으로나는지금의너를사랑하는것이아니라옛날의너를사랑하는것임을알고있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역시나아직도나는옛날의너를또한그러하니지금의너도아끼고사랑하나보다.

아.이렇게커져버린카나리아를맘저구석으로밀어넣느니그냥날려보내고싶다.
또얼마의낮과밤을보내야할까.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나, 탕기, 캥거루족 = 88만원 세대의 독립


캥거루족에 관한 위트있는 프랑스 영화 "탕기"



나는 월급을 받는다. 지난 6월부터.
액수는 한달에 약 70만원 정도 (원래는 83만원 세금 떼고 73만원)

"엄마 생일선물에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요?) 하고 분홍신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뭐긴 뭐야, 경제적으로 독립해야지~ 너 그 월급받고 뭐에써. 흥청망청 쓰지마!"
라는 소리를 대뜸 들었다.

처음 드는 감정. 솔직하게 말하자면
'뭘 알고 저러는 걸까?'

화가 났다.
.
.
.
.

내가 사는 월세집은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이다.
밤비와 나누어 내면 각각 식비(쌀, 계란, 야채, 우유, 두부 등), 관리비, 전기세, 물세, 가스세, 생활필수품 포함
40만원씩 내고 있다.

거기에 전화비나 인터넷비, 유흥비, 문화생활비 등은 제외되어있다.
전화비 약 4만원
인터넷 2만 5천원
유흥비 + 문화생활비(옷값 포함) 10만원
외부식비 3만원
교통비 3만원
영어학원 25만원
하면 벌써 87만원이다.

내가 월급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돈의 한계를 넘어버린다.
거기에 급작스럽게 쓰이는 병원비 혹은 사고비 등을 생각하면 여윳돈을 생각해놔야 하고 저금해야할 돈도 있다.
88만원세대, 88만원세대 하지만 정말 88만원세대로 내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학원을 다니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다.
물론 각오하면 그렇게 살 수 있기는 하다.

정말 아끼고 아껴 사람 만나지 않고, 옷사지 않고, 영어수업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나는 고립되어 버린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돈이 든다. 커피값만 5000원이다.
옷을 사지마 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가 꾸질꾸질하게 입고다니면 이미지 관리를 요구한다.
취업하려해도 기본이 토플, 토익에 자격증, 대학, 내가 어느 대회에서 입상했는가를 요구한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뿅하고 만들어낼 수가 없다.
사회에서는 어느정도의 스펙을 요구하고 그것에 따르려면 또 내가 얼마만큼의 값을 유지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돈을 써야 한다.

이 상황에서 독립하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싶다 (차라리 밥이라도 한번 사주시면서 말씀하시던가.)

내가 일주일 동안 영어수업을 받고 영어공부를 하는 것과 시급 4500원을 받으면서 알바를 하며
독립을 하는 것중 무엇이 나에게 보탬이 되냐 물으면
나는 당연히 영어수업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내가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지만...)

영화 안의 탕기는 심리적으로 부모님에게 독립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구조적으로 독립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저런 한심하단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억울하다.

창의서밋에서
부모님이 없어져버린 청소년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이런 주제를 갖고 창안대회를 가졌는데
1등의 작품 제목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보면서 생각했다. 가짜다.

나는 혼자다.
아무런 베이스 없이 사회에 뛰어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아무런 안전망도 없다.
아니 안전망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것또한 최소한에 최저의 질이다.
실제로 혼자 자립하면서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처절하다.
그 친구는 먹고사는 것에 허덕인다. 대학갈 돈도 없다.
우리 회사에 있는 대학교 4학년 친구는 학자금만 1500만원이란다.
홍대 법대에 다니는 한 형은 학자금만 2000. 그는 자신이 변호사가 되면 가볍게 값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많은 20대들이 졸업하기 전 빚부터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30, 40대들은 20대들의 상황을 너무 모른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돈이 없다는 것은
개인의 이미지, 개인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추락시켜버린다.
사람못만나고 자기 이미지 연출못하고 자기개발못하고.
한마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다.

오기만으로 되는 시대도 끝났고
호기만으로 되는 것도 어느정도의 기본 바탕이 된 사람만 가능하다.
요행도 없고 나의 모든 가치는 서류로 정리 가능하다.
아니면 빽이 있던가, 연줄이 있던가. 천재던가.

대부분의 똑똑한 친구들은 그걸 다 알아버렸다.
그래서 자기개발, 자기 스펙에 힘쓴다.

뭔일이 터져도 80년대의 그 때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순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 잘못인가? 를 따지면 안되는 문제지만
이게 우리 20대에게 따져서 될 문제인가?
개인에게 독립하라고 한심하듯 이야기하면 풀리는 문제인가?

우석훈 박사님은 20대들이 토플책을 버리고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지라 하지만
과연 그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우석훈도 프랑스유학 다녀오신 '박사'님인데...)

점점 더 상황은 안좋아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향한 대우는 좋아질 기미가 없고
사람은 여전히 연줄과 대학, 점수로 그의 질이 결정된다.
일할 곳은 점점 없어져가고
(어떤 미친 네티즌은 공장가서 일해도 돈받겠다고 하는데 씨발 개새꺄 너가 거기가서 일해봐)
하고싶은 것 하면서 먹고살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때문에 하자도, 정부도, 세계도 창의에 눈길을 돌리는 듯 하다.
창의적인 일자리, 창의적인 생각, 창의적인 상상이 지금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실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ㅎㅎㅎㅎㅎㅎㅎ)

하지만 나는 그것도 그렇지만.
정부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기성세대들이) 사회적약자와 20대들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십대들의 목소리도 좀 더 커져야한다.
사실 사회가 바뀌기는 힘들고 기성세대가 갑자기 변하는 것은 매직같은 일이다.
더이상 기성세대들의 -무한경쟁과 물질주의-틀에 갇혀 사는 것은 거부하면 안될까?
돈보다는 서로가
점수보다는 상상이
노동보다는 놀이가 대우받으면 안되는 것인가?

젊은 피로 재밌고 즐겁고 위트있고 빈틈을 노리는 일들을 하자.
궁핍하게 사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되 궁핍으로 세련됨을 노리자.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나부터 그러자...
응 ㅠㅠㅠㅠ


졸린김에 끄적여봤다...일어나서 다듬어야지...

아버지

 안녕하세요. 아빠. 초등학교 때 종이 카네이션을 접어 썼던 편지를 생각하면 꽤 오랫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네요. 하지만 이것을 당신이 읽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조금 후련하게 편지를 쓰렵니다.

 근 몇년간 당신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 4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요즘 엄마의 손을 보며 그리고 가끔씩 나에게만 내비치는 그녀의 어리광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드셨겠죠.

 지영이의 졸업식 때 사진으로나마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진에 있는 지영이의 얼굴을 보며 실실거리다가 한장의 사진에 있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그리고 숨이 찼습니다. 통통해진 얼굴, 이마의 주름, 약간 쳐진 볼, 쑥쓰러움이 묻어있는 희미한 미소. 눈을 땔 수가 없었어요. 이게 뭔가 싶었거든요. 아빠도-당신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그때서야 실감했나 봅니다. 그리고 나한테 아빠가 있었던 것을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난 이따금 죄책감이 듭니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하는 나의 막내동생 현확이 때문입니다. 종종 어두운 밤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될 때면 저는 가슴을 치며 웁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애교부리고 싶고 애정을 받고 싶습니다. 나조차 이런데 어린 그애는 이 어둠을 어떻게 견딜까 걱정됩니다. 그럴 때면 온갖 상상을 하곤 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10년 뒤 스무살이 된 그 아이가 날 찾아와 "왜 날 버렸어?" "왜 그 때 그냥 갔어?" 라고 묻는 상상입니다. 나를 미워할지, 그 때 나는 뭐라고 이야기해줘야할지, 그 아이는 어떻게 클지 두렵습니다. 그냥 내가 현확이와 같이 살까? 생각하지만 아직 내 삶을 지탱하지 못하는 저보다는 당신이 좀 더 그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겠죠.

 생각해보면 제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접어들던 시절부터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나싶어요.  확실한 시발점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건들이 기억납니다.

당시 나는 내 마음 속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 당신은  내 삶을, 우리 가족을 맘대로 뒤흔들어 버리는 지배자 같았습니다.
엄마 또한 당신의 부인이었던 그녀 또한 그녀 나름대로의 삶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당신 또한 항상 가장으로만, 남편으로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신현균으로써의 삶도 있지 않나요? 엄마는 일을 하고 싶어했고 사회활동하는 것을 즐거워하셨죠. 그럼 그런 점을 당신이 인정해주고 배려해주셨어야 합니다. 나를 키우면서 주부 우울증도 잇으셨다고 고백하셨는데 당신은 모르셨나요?
또한 너무 많은 것을 바렜던 것도 문제입니다. 커리어우먼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직장에 나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왜냐면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하니까요.
컵에 있는 맥주를 나에게 뿌리고 골프채로 내 귀를 치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요?
그 때의 아찔했던 감정들, 상황을 나는 감정도 아니고 기억도 아니고 근육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답답해하고 울고 미워하고 반항하고 그 때의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내 지갑에 당신의 증명사진을 칼로 찢어서 갖고 다녔구요.
가족사진에 보이지 않게 당신의 얼굴에 칼로 흠집을 냈죠.

당신의 신발을 숨겼던 사건이 기억나시나요?
당신은 처음부터 내가 그랬다고 아셨었죠.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정말 당신이 싫어서 갔다 버린 것이었어요.

아는 형에게 나는 아빠를 죽일거야 라고 선전포고를 하고는 했어요.

매일 음식을 만들 때면 락스를 넣어 당신을 죽일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총. 총이 있으면 당신의 머리, 관자노리를 총 끝에 갖다대어 죽이는 상상을 했죠. 속으로 쾌감을 맛보면서요.

엄마와의 이혼재판이 오고갈 때 내가 증언을 한 부분이 있으니 그 때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이 아이는 어릴 때 강간을 당해 아빠는 물론 모든 남자를 무서워하고 싫어한다구요.
세상에. 난 당신을 아빠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쓰레기.

저번에 사주를 봤는데 제 사주에 아비 부자가 없더군요. 재미난 일이지만 그것은 사주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당신이라는 아빠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가합니다. 나는 아버지 라는 위치의 강압적인 모습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내 안에서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만,
그건 아마 내가 아이에서 소녀가, 소녀에서 어른이 되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맘 속 깊은 아이 신지예는 당신을 아직도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그 아이를 마주볼 때면 나는 눈물부터 차오르고 숨고 싶어요.

그 때의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아 다행입니다. 내가 계속 아이였다면 나는 계속 울고 살았을 것입니다. 결코 극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물론 계속 엄마와 나, 지영이와 현확이가 뿔뿔히 흩어진 것에 대해, 나의 동생들이 가족사랑 하나 받지 못하며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도 노년이 되면 쓸쓸히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소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이 편지를 당신이 아닌 현확이와 지영이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물론 당신에게는 보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이편지를 보면 아마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싫어요. 그리고 이미 노쇠해진 당신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미 무의미하잖아요?

그 때가 되면 나는 나대로 나의 동생들에게 용서를 빌 생각합니다. 동생들이 나를 이해해줄까요? 아, 아버지 그런 점에서 나는 또 당신이 되어버리는군요. 또 슬퍼집니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ㅈㅅㅇㅂㅇㄴ

오늘 너무 서러워서 .... (사실 누구한테 당한것도 아니다만은)
저녁도 안되어 당산역에서 엉엉 울었다.
오널은정말재수옴붙은날이었다.

사건은 내가 전 글에 올렸듯 노트북 어뎁터를 가져오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 월요일 오후까지 보내야하는  공모전 서류가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 엄청나게 큰 켄트지에 그리는 그림을 여섯장이나 그려야했다. (아니 이사람들도 웃기지 어떻게 저 그림을 이틀안에 그려 나보고 말라죽으란소린가)

2. 탐탐 도착, 얏호. 졸리지 앉게 에스프레소 더블이요!

3. 자리에 앉아 맥북을 켜니 어댑터가 없었다.. 좌절
남은 뱃더리 용랑 6분...... OMG

4. 탐탐에 있으면서 할 것이 없었던 나는 다른 이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죽치고 앉아있었다. 그 새벽 버스도, 지하철도 자전거도 없는 내가 어디에 갈 수는 없으니까....

5.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6. 멍때리며 앉아있었다. 휴지접기, 종이접기를 했다.

7. 강산이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아프단다...

8. 은정이에게 연락이 없다.. 왜지... 아잉아잉 거리면서 문자 4통, 전화 2통을 보내자 그제야 답장이 왔다. 연락오는지 몰랐단다.
난 탐탐에서 한시간 죽쳤다.

9. 은정이가 라면먹고 있으니 자기네 집으로 오란다. 당시 새벽 3시쯤. 뭔놈의 라면이여 생각했지만 갈 곳이 없어 발길을 돌렸다.

10. 가는 길에 태랑한테서 아저씨 뽕빨느끼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우리집 올래?" "어딘데?" "이대" "안가" 쏘쿨하게 끊었다.

10-1 가는 길에 토밟았다. 주황색 토. 이상한거. 끈적끈적 푸르딩딩한거...
신발에서 냄새났다.
밑창이 주황색이 됐다. 씨발

11. 은정이네 집에 도착하니 원영이와 은정이와 티아와 티코가 나를 반겼다. 역시나 소주에 라면먹고 있었다.

12. 조금 특이했던 점은 2PM 영상을 보고 있었단 점이었다 이 불굴의 아가씨들은 장장 여섯시간 내리 2PM의 뮤직비디오, 버라이어티쇼를 돌려봤다. (대단해)

13. 왕소심 나는 "너는 2PM 오덕질을 할 동안 나는 일을 할테니 네 어뎁터를 빌려줘! 이은정!"
할 수 없었다. 결국 잠이라도 청하려 했으나 고양이 알레르기 발동
엣치 엣치
콧물 줄줄
뾰로지 뽀록

14. 그렇게 밤 새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8시 하자 도착. 나에게 있는 건 6장의 종이와 아크릴물감(헐. 수채화물감도 아니고, 포스터 물감도 아니고.. 아크릴이라니....)

15. 난 아크릴 잘 모른다. 하지만 해봐따..
오후 12시가 되도록 한장을 못끝냈다.
욕해도 되나? (조때따....)

16. 12시 30분경 너무 졸려 잠이 들었지만 내 머리위를 돌아다니는 희끄무르죽죽한 5장의 종이환영 때문에 50분에 일어났다.

17. 그 때쯤 도착한 조정자팀. 오묘여신님이 나에게 과자와 우유를 하사해주셨다. 우적우적

18. 포스터 물감을 찾아 하자를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
운영지원부 -> 없는데...
디자인실 -> 없는데.. 104호 한번 가봐요.
변 -> 하자에 물감많았는데...

결국 내가 창고 들어가서 104호 뒤져서 아이들방 문따고 들어가서 책상뒤져서 물감겟.

19. 종이가 모자르다는 것을 깨닳았다.
자전거 타고 10분거리 모닝글로리에 가서 종이 6장 삼.

20. 6장의 그림 중에 6번째 그림 완성
1번째 그림 80% 완성

나머지..... 희끄무루죽죽

21. 어라 4시네? 강남에서 5시에 영어 수업이 있어 얼렁 치우고 집에 잠깐 들렀다.

22. 집 앞에서 옆집 할머니 난리.
그 이유. 룸메가 어제 새벽 3시에 문을 두들겨서 시끄러웠다.
이 때 감정상태가 너무 메롱이라 무시

23. 옷갈아입고 집에서 나오는데
옆집 할머니 윗집 아줌마에게 한풀이 시작.
나 감정폭발해서 싸우기 시작.
할머니 사람잡는다며 쩌렁쩌렁하게 말 (목소리 큰게 다가 아니라구요)
결국 우리집 스토커 이야기도 나옴

24. 대충 수습하고 자전거 타고 당산역까지 감. 이때 시간 4시 40분. (다섯시 강남인데...)

25. 당산역에서 자전거를 놓고 가려고 하는데 자물쇠번호를 까먹었다.
5220인가... 5240... 인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음...
결국 자전거 방치..

26. 당산역 도착. 서러워서 눈물 뚝뚝
강산에게 전화해니 흐엉엉

27. 지하철왔네.. 이래저래타야지. 하면서 탔는데 반대편 노선...

28. 합정에서 내리려는데 문앞에서 물건 떨어뜨림... 내 뒤 남자 놀라 흠칫하셨어요... 죄송해요..

29. 전철 갈아타고 강남으로 고고.

30. 강남 도착. 한시간 지각 그런데 장소가 어딘지 모름.

31. 수업받고 있는 수지에게 전화해 장소 알아냄.

32. 너무 따뜻하게 나를 반겨주는 MJ.  덕분에 맘이 좀 좋아졌다.

33.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수지가 자기가 종로에서 알게된 외국인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MJ와 나는 극구 말렸지만 수지는 맘이 변하지 않음.

34. 결국 종로행.

35. 만나고 보니 외국인 훈남에 착했음. 그리 어두침침하지도 않았다.
이름뭐? 압델? + 수지 쌍쌍으로 만나 데이트 분위기에 내가 없는편이 나을 듯 싶어 몇마디 나누다가 먼저 간다고 이야기했다.

36. 하지만 셋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상태. 쏘쿨한척하려고 안녕!!!!!! 하며 엄청 뛰었다. 그들이 날 볼 수 없을 때까지...

37. 근데 나 길잃음.

38. 여가 어디가..

39. 빙빙 돌아다니다가 어떤 아저씨를 통해 내가 종로역에서 완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닳음

40. 하지만 아직도 내가 어딘지 모르겠음. 1시간 가량 해맴.

41. 다행히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기다리다 보니 271 도착!!!!!!... 인줄 알앗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서더라.

41-1. 271타고 홍대 도착. 홍대에서 5714타고 당산 도착. 당산에 무사히 있는 나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헐래벌떡 달려옴.  오늘이 서류 마감이니까 12시까지만 보내면 될꺼야!!!

42. 생각하며 팜플렛을 보니 오늘 오후 6시까지더라.

43. 결국 인생 무상이다.

오늘의 성과물
그림 2장.
1시간 늦은 영어 수업.
토묻은 신발밑창.

2009년 8월 6일 목요일

정신없다

정신없다.
사이버망명한답시고 뭔가를 끄적이긴했는데 뭔가이렇다할것은아니다.

h. 는 IDEC때문에 정신없으시다.
끝이 약 한달 남은 시점에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 -난 아마 죽겠지요.-

에세이
콜로키엄준비
초대장
포스터

이야기꾼은 또 이야기꾼대로 스케줄을 맞혀가야 한다.
-훨훨 난다. 8월 중순 쇼케이스
-여우와 전화박스 생과 즉흥연습
-세가지 질문 10월까지 개인작품 하나 만들어보자.
-청소년 관련 연극 12월
-워크숍북 제작

6월에 신나게 놀아재낀 벌을 7,8,9월에 받고있다.
역시 놀면 안돼.....OTL


아이고,
너를 보러 가고싶다.
금산!!!가고 싶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목록

월급타면 책을 잔뜩 살거다.

수잔손탁 콜렉션
은유로서의 질병 13,200
우울한 열정 12,000
강조해야할것 18,400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17,100
화산의 연인 6,800
타인의 고통 12,380
사진에 관하여 13,200
해석에 반대한다 17,250
문학은 자유다 13,200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12,000
인 아메리카 15,120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7,800

경제학
폴라니 : 거대한 전환 34,200

제프리 삭스 : 빈곤의 종말
로버트 라이시 : 슈퍼 자본주의
제러미 리프킨 : 유러피언 드림
폴 크루그먼 : 미래를 말하다



인문학 발터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Meadows Donella H : 성장의 한계
에드워드 윌슨 : 통섭

고병선 : 고추장, 책을 말하다.
역사
로버트 단턴 : 고양이 대학살

소설
피터브룩 : 빈공간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애드거 앨런 포 : 우울과 몽상

시집
기형도 : 잎 속의 검은 잎
김혜순 : 당신의 첫
이대흠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석남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얼마냐! 꼭 다산다!!!!!

쥐잠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잔 것 같은데 2시에 한번 깨고 3시에 한번깨고 3시 30분에 완전히 깼다.
약간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분명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무슨 꿈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집 앞에 옆집 할머니가 놓은 것이라고 추측된 햄스터가 두마리가 있었다. 그 쥐들은 각각 우리 하나씩에 넣어져 있었다.
아침에는 분명 두마리 모두 우리 안에 있었는데 저녁에 보니 한마리가 우리 밖을 나와있다. 나는 그 '쥐'를 손으로 잡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 쥐가 밖으로 나가면 결과는 뻔하잖아?
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손으로 잡아 다른 햄스터가 있는 우리 1 안으로 집어넣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우리를 왜 두개로 나누었겠어? 서로 잡아먹으려는거 아냐?
아니나다를까 두마리 서로 쉭쉭 거리면서 싸우더라.
난 우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까 생각했지만 쥐한테 손을 물린다거나 쥐가 날 싫어한다거나 쥐가 저기 구석으로 들어간다거나 쥐가 튀어오른다거나 쥐가 내 손을 탄다거나 쥐가 내 손을 긁는다거나 따위의 생각들이 자꾸 생각나서 (그리고 정말 들쥐같아서....)
그냥 집으로 들어와버렸다.


자꾸 빨간 햄스터 팔조각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마 내 어렸을 때의 기억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가야금을 잘치던... 아마 이름이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슬비 혹은 솔잎 따위의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는 자기가 기르던 어미 햄스터가 아기 햄스터를 잡아먹었다고 얘기했다. 자신이 본 뻘건 피의 정황과 함께.

문 밖에 나가면 햄스터 한마리가 피 뚝뚝 흘리고 서있을까봐 무섭다.
난 아무래도 그 꿈을 꾼듯하다.


쥐나 애완동물 분류의 이야기를 해서 갑자기 생각난 text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상한 티파티- 혹은 미친 티파티' 이런 분류의 모두 다 아는 미친 모자장수와 5월의 토끼, 그리고 쥐가 나오는데 앨리스가 모자장수, 토끼 그리고 쥐와 M을 시작되는 낱말 푸기 같은 게임을 하다가 앨리스가 먼저 자리를 뜨는데 마지막으로 앨리스가 보게 되는 모습은 토끼와 모자장수가 쥐를 찻잔에 억지로 집어넣는 장면이다.

각주로 나오는 말 중에서 "누군가 보고해주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빅토리아 시대에는 찻잔에 쥐를 애완용으로 키웠다고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뭐.. 이런 식의 말이 있어서

-그 책이 아무래도 사무실에 있는듯 하다. 비싼책인데.... 다시 가져와야지-
난 쥐를 찻잔에 기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다.


아무튼 요지는 난 쥐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