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5일 월요일

love


Love (John Lennon)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Love is free,
free is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2009년 5월 6일 수요일

Re

 샤는 아침잠이 많은 타입이다. 그녀는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이 밤형 인간이라는 것을 누누히 강조하며 이야기하곤 했다. 설사 자신이 약속 등에 늦어도  하지만 그날 따라 그녀는 일찍 일어났다. 몸상태가 괜찮은건가? 생각했지만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다섯시였다. 침대 위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이내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2009년 5월 2일 토요일

숨이 턱 막혔다.
지하철 안에서 보니 선유도 공원이 한 눈에 보였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 같다던 강산......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가냘프다..
그리고 생각처럼 삶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에게
오랫만이야 웬일이야
살빠졌다예뻐졌다
뭐하니
바쁘니
프린지페스티벌 참가해봐
촌닭들 들어와ㅋㅋ

아이런 시시껄렁한 얘기에
분명히 우리는 술한잔의 약속을 했었고 (기일 없는)
그냥 헤어졌다.

내가 일주일 전에 그녀를 만났다면.
내가 홍대를 떠돌다가 전화 한통이라도 했다면.
제발... 뭐하니? 라는 문자라도.
내가 그 길을 걷고 있었다면.
그녀를 우리집에서 재웠더라면.
같이 술을 마셨더라면.
그와 그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 참 아찔하다. 이런 상상

아 나는 너를 얼마나 들여다 보고 있었던가.



...

가끔 애정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숨이 턱 막혔던 문제 중 하나이다.
왜 나를 그만큼 애정있게 봐주지 않냐는 때부리는 것 정도겠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삶이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인간 또한 내 바람처럼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내가 힘을 주고 받는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 서로 챗바퀴가 맞물려 그런 관계가 늘어난다면 그것 또한 복일 것이다.

내 삶은 날 지탱해주는 모든 사람들과 조건들에 의하여 가능해진다.

반지하 햇빛도 안드는 방두칸에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에게
우리 엄마가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안걸었다면.

현확이가 없었더라면.

혼자 지내기 짜증날 때면 홍대에 찾아가서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는 뿡이가 없었더라면

내가 힘들어 하는 척 하면 눈치라도 봐주고 밥이라도 사주는 이종희가 없었더라면

눈빛만으로도 날 사랑해주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너무 답답해서 주절주절 떠드는 것에 날카롭고 유쾌하게 받아주는 싱싱이가 없었더라면

시시콜콜한 연애사부터 사회문제까지 얘기할 수 있는 오드리가 없었다면

얘기하지 않고 5시간은 지낼 수 있는 비호가 없었더라면

그 때 내가 계속 울 수 있도록 허락해준 뮤즈가 없었더라면

뒤에서 뽕빨날리게 욕했겠지만 그러면서도 날 따라와주고 또 나와 싸워준 촌닭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었을까?


오늘 생각했다.
지금 나와 힘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더 충실하고 싶다.

6월이 지나 여유가 생기면 그들을 위해 편지를 쓰고 싶다. 아주아주 지긋이 천천히 정성을 다해서.

2009년 4월 30일 목요일

-

-  <-이거 하이픈이니?
도대체 왜 요즘 다 이거 쓰는거야?
부드러워보여서?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그때의 그 감성이 그립다.

아, 좀 당차게 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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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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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너는
아주 눈부신 구슬 같다.
우리가 나이가 먹으면
너는 마치 빨갛고 노란 노을이 될 줄 알았다.
아님 호탈한 욕쟁이 할머니 말야.

간만에 널 다시 보니
참 푸르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가지는 너의 끄덕임이고
뺨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은 너의 말로 생각했다.

어제는 너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야한 얘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간지럼도 태우고.
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거하게 동동주나 한사발 했을 거야.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가보다.
넌 어쩐지 내 가슴에 생채기인냥 남아있다.
널 생각하면 눈이 아리고 세상이 아득해진다.

너의 눈동자 속눈썹이 제법 길었는데.. 눈도 동그란 것이 이쁜 상이었어.
코의 생김새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똑했지.
너의 키가 얼만했지? 나보다 아주 조금 컸는데. 키가 작은 편이었지만 결코 작아보이지 않았어.
너의 코의 모양은 어땠지? 잘 기억이 안나.
둥그렇고 작은 얼굴, 그 손, 네 목소리, 좋아하는 담배의 종류가 뭐였지? 자주 입고 다니던 옷은....
아주 가끔 쓰던 가발은 기억이나. 소리 크던 웃음, 붉은 뺨, 입술이 많이 얇았나?

처음에는 또오렷했던 것이
점점 희미해진다.

겨우 일년인데. 난 너를 많이 잊고 있나봐.
그러면서 점점 난 너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너보다 언니가 되면 어떻할까? 아마 울지도 몰라.

그치만, 그래도, 그러니까 잘 살게. 괜찮지?

이제 널 생각하면 푸를거다.
그래. 매년 4월마다 보러갈께. 푸른 하짱.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방귀 뀌는 소냐? 식탐 많은 인간이냐? - 오마이뉴스

'워낭소리'란 영화로 떴다.

영화로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나는 촌 사람들 집안을 챙기는 살림꾼으로 부엌 한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한 한 식구였지. 지금은 달라. 사람들이 참 많이 변했어. 이제는 같이 힘써 논밭 일굴 생각은 없고 그저 살 찌워 나를 팔지 못해 안달이니 걱정이야.

몇 해 전 사람들이 "유엔환경보고서"란 걸 내 놨지. 숲을 해치고 땅을 못 쓰게 만들며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범인이 우리 소라지?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배후세력으로 우리를 가리켰어. 세상에나! '소가 웃는다'더니. 허허허

읽어보니 내 방귀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

지구별에 있는 풀밭의 26%는 소가 차지한다.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은 소가 먹는다. 소가 늘어날수록 숲을 해쳐야 한다.(알면서 소 마릿수는 왜 자꾸 늘리나?) 내 몸뚱이 생김새까지 들먹이며 눈을 홀기더군. 


소의 방귀가 지구온난화의 주범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위가 4개인데, 풀을 뜯어 먹은 뒤 제1위에 있던 식물을 다시 되새김질해서 다음 위로 차례로 보낸다. 이 때 분해효소나 미생물이 활발하게 움직여 섬유질을 소화시키는데, 발효를 일으키는 소화과정에서 내는 트림이나 방귀에 많은 메탄가스가 들어 있다.


이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잡아 가두는 온실효과가 20배나 높다. 소나 양들이 내뿜는 메탄가스를 모두 모으면 지구상 온실가스 발생량의 15퍼센트에 이른다.


소가 내뿜는 방귀와 트림 때문에 나오는 메탄과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가 더워져 사람들이 못산다.  

그래! 나 방귀 좀 뀐다.

옛날부터 뀌어오던 방귀인데 왜 지금 난리야?

가끔씩 터뜨리는 우리들 생리현상보다 끊임없이 집착하는 사람들 식탐이 문제 아닐까. 핵심은 밀쳐놓고 소 위장이 몇 개니 트림을 하루에 몇 번 하느니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더군.

배부름... 동물에겐 평화의 시작, 사람에겐 탐욕의 서막

1kg의 소고기 생산을 위해 2만 리터의 물과 옥수수 11kg이 필요하다. 이산화탄소는 유럽산 자동차가 250km가는 거리와 맞먹는 양을 내뿜지. 전 세계 에너지의 3분의 2가 육류를 생산하고 운송하는데,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2가 가축사료로 쓰이고 있단다.

이런 자료를 보면 마치 소가 지구별을 망치는 흉악범같다.

핵심은 '소'가 아니라 '소고기'다.

소가 지구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소고기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생태계가  엉망이 되는거야. 지구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영양을 따져볼 때 먹지 않아도 그만(오히려 그만 먹어야 건강에 좋다)인 소고기를 오로지 소유욕과 과시욕 때문에 먹는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채식을 하자'느니 '고기 먹는 양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곁가지일 뿐. 줄기는 배부름을 모르는 사람들 탐욕이거든.
배부름이란 소에겐 평화의 시작이지만, 사람에겐 탐욕을 불러올 서막에 지나지않아. 사람은 자연계에서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는 단 하나의 종이지.

다른 생태종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위주의 사고방식, 지구별을 독판치는 생활방식이 문제야. 가장 과학적인 분석도구를 들이대며 앞날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척하면서도, 먹을 것 앞에서는 이성을 잃어버리는 분별없는 사람들 태도를 되짚어볼 때야.

내 방귀에만 신경 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