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8일 금요일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사무엘 베케트 : krapp's last tape



#Krapp's Last Tape
베케트 작품들 중 유일한 1인극이며, 주인공 크랩이 30년 전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테잎을 재생함으로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기억과 현재심리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한 당혹감을 어찌할 바 모르는 크랩. 목청을 가다듬고 크랩은 마지막이 될 테잎을 녹음한다. 결국 그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크랩의 이 마지막 테잎의 마지막 구절만은 그의 남은 생과 일치하게 되리라.
"내 생애의 가장 좋은 날들은 지나가버린 것 같다.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는데. 그러나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겠다. 지금 내게 그때의 그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님에랴.
그렇다, 나는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다."
(크랩은 꼼짝도 않은 채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테이프만 돌아가고 있다.)

#<침묵과 소리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中에서 - 권혜경 지음, 도서출판 동인
제2장 기억과 글쓰기
1. 크랩의 마지막 테이프 : 말의 기록과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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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랩은 말의 기록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말의 헛된 반복(futile repetition)을 듣는 크랩의 심정은 곧
"모든 언어는 언어의 과잉이다. (all language is an excess of language, Beckett 1983 107)"
이라고 말한 모란(Moran)의 인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크랩의 귀착지가 침묵임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침묵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강박적인 이상에 희생당한 삶의 실패자로서의 크랩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과 말의 헛됨을 인식한 투명한 응시(staring)의 소유자로서 크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그가 마지막 부분에 녹음하는 테이프는 아마 그의 마지막 테이프가 될지도 모른다. 유한한 인간의 삶, 즉 시간과의 속절없는 싸움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자신의 인생을 말로써 기록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집착했었던 "껍질에서 알맹이를 골라내기"에 부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인생 중 의미깊다고 생각되는 항목들을 기록해두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침식당한 크랩의 기억력은 그가 생각한 원래의 의도를 따라잡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유한함을 더욱 더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히려 노년의 크랩을 보다 사로잡는 것은 '껍질'에 불과했던 주변부 기억들이며, 그는 젊은 시절에 갖지 못했던 통찰력으로 알맹이와 껍질, 중심의 기억과 주변부의 기억드을 모두 아우르는 확대된 인식의 폭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헛된 반복"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에게 남겨진 것은 여전히 그의 기억과 말하기, 곧 글쓰기인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목소리를 기록하고 또 과거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하여 재생함으로써 편집자, 더 나아가 작가의 기능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백자대호 - 김원용


조선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 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白衣의 민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 古今未有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비에도 지지 않고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 雨ニモマケズ
-미야자와 켄지 - 宮沢賢治(1896~1933)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아메니모 마케즈 
風にもマケズ                                     바람에도 지지 않고
카제니모 마케즈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 않는  

유키니모 나츠노 아츠사니모 마케누
丈夫ナカラダヲモチ                           튼튼한 몸을 가지고
죠오부나 카라다오 모치

慾ハナク                                           욕심은 없이
요쿠와 나쿠
決シテ怒ラズ                                    결코 화내지 않으며
켓시테 오코라즈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이츠모 시즈카니 와랏테이루
一日二玄米四合ト                             하루에 현미 네 홉과
이치니치니 겐마이 욘고우토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된장과 얼마간의 채소를 먹으며
미소토 스코시노 야사이오 타베
アラユルコトヲ                                모든 일에
아라유루 코토오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に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지분오 칸죠우니 이레즈니
ヨクミキキシワカリ                         잘 보고 들어 깨닫고
요쿠 미키키시 와카리
ソシテワスレズ                               그리고 잊지 않으며
소시테 와스레즈
野原ノ松ノ林ノ陰ノ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
노하라노 마츠노 하야시노 카게노
小サナ萱ブキノ小屋二ヰテ               작은 짚으로 인 초가에 살면서
치이사나 카야부키노 코야니 이테
東二病気ノコドモアレバ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히가시니 뵤우키노 코도모 아레바
行ッテ看病シテヤリ                         가서 간호해 주고
잇테 칸뵤우시테 야리
西二ツカレタ母アレバ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니시니 츠카레타 하하 아레바
行ッテソノ稲ノ束ヲ負ヒ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잇테 소노 이나노 타바오 오히
南二死二サウナ人アレバ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미나미니 시니소우나 히토 아레바
行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일러주고

잇테 코와가라나쿠테모 이이토 이히

北二ケンクワヤソショウガアレバ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키타니 켄카야 소쇼우가 아레바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부질 없으니 그만두라 이르고
츠마라나이카라 야메로토 이히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며
히데리노 토키와 나미다오 나가시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걸어
사무사노 나츠와 오로오로 아루키
ミンナニデクノボウトヨバレ              모두에게 등신이라 불리우고
민나니 데쿠노보우토 요바레
ホメラレモセズ                                  칭찬도 받지 못하고
호메라레모 세즈
クニモサレズ                                     골칫거리도 되지 않는
쿠니모 사레즈
サウイフモノニ                                 그런 사람이
소우이우 모노니
ワタシハ                                           나는
와타시와
ナリタイ                                 되고 싶다.
나리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