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4일 수요일

마주이야기

2009년 10월 10일

 

엄마의 결혼 반지를 보며

세찬 : 와~ 예쁘다.

엄마 : 세찬이도 이다음에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 엄마가 이렇게 예쁜 반지 사 줄께~~

세찬 : (부끄러운 듯 웃으며 살짝 앙탈을 부리듯) 싫어엉~~

엄마 : 뭐가 싫어? 엄마 아빠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도 해서 세찬이랑 윤채를 낳았잖아.

세찬 : (한참 생각하다가) 어딜 가다가 만났는데?

엄마 : 띠요용~~~

 

 

2009년 11월

 

세찬이와 윤채랑 함께 차를 타고 집에 돌아 오는 길이었다.

윤채 : 엄마! 불 좀 켜줘.

엄마 : 왜?

윤채 : 코딱지 파게~~

엄마 : 엄마 운전하는 데 방해 되니까 불 켜면 안돼.

세찬 : (얼른 머리위에 있는 실내등을 켜주며) 내가 켜 줬어.

윤채 : (낄낄 거리며 웃는다) 하하하하 코딱지 다 팠다. 휴지 줘.

뒷처리 다하고 한참을 달리는데..

윤채 : (자지러지게 웃으며 창밖을 가리킨다) 하하하하! 엄마 쟤도 코딱지 팠나봐!

윤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실내등이 켜진 자동차 한대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2009년 7월 27일

 

낮에 하마방에 당당하게 입성하고 돌아온 세찬이에게 엄마가 물었다.

(하마방에 가면 주혁이랑 칼싸움도 하며 놀 수 있다고 꼬셔 두었던 터라.....)

엄마 : 세찬아! 하마방에서 주혁이랑 칼싸움하고 놀았어?

세찬 : 아니? 칼이 없었어.

엄마 : 낮에 살짝 보니까 칼 같이 긴 것을 만들어서 놀고 있던데, 그거 칼 아니었어?

세찬 : (한참 생각하더니 씩 웃는다) 그거! 그건 새로운 발명품이야.

엄마 : 발명품? 무슨 발명품?

세찬 : 응, 나쁜 아이를 착하게 만들어 주는 발명품.

엄마 : (의아해 하며) 누굴 착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세찬 : (의기양양하게) 영수!

하루 종일 열심히 뛰어 다니느라 열매를 힘들게 만들었던 영수가 세찬이 눈에는 나쁜 아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2009년 6월 28일

엄마, 아빠, 오빠랑 백화점에 간 윤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기 직전.

윤채의 안전벨트는 항상 엄마만 풀어 줄 수 있다. 아빠가 풀어 주는 것을 무슨이유인지 윤채는 너무 너무 싫어한다. 이날도 역시 아빠가 윤채의 안전벨트 한 번 풀어주려고 한껏 긴장한채 미소를 띠며 윤채에게 다가간다. 엄마랑, 세찬이도 윤채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런데...

윤채가 오늘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빠 : (살짝 눈치보며 윤채가 앉은 쪽의 문을 열고) 자, 내리세요.

윤채 : (웃으며 아빠를 바라본다) 자기야!!! 나 자기가 좋아지려고 해.

아빠, 엄마, 세찬 : 허걱!

그렇게 순식간에 나의 자기는 윤채의 자기가 되어버렸다.

 

2010년 3월 19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의 대화

세찬 : 윤채야 우리 말놀이 하자. 내가 먼저 문제 낼게. 맞춰봐.

윤채 : 그래

세찬 : 이건 ‘이’자로 시작해. 이건 이름이야. 말을 되게 안들어.

윤채 : 으음. 알았다. ‘이녀석!’

세찬 : 응? 이윤챈데.... 그럼 이거 맞춰봐.

이번엔 ‘데’자로 시작하는 거야. 앞에서 막 기타를 두드려. 그러면 우리가 막 춤을 춘다. 뭐게?

(세찬이의 의도는 두들기타를 가르쳐 줬던 ‘데자부’였다)

윤채 : 으음. ‘대~리~ 운전!’

엄마 : 하하하하하! 대박이다.

 

 

 

2010년 2월

 

반쪽과 함께 뒤 끝 없는 성격의 윤채를 보며 “윤채는 참 쿨해” 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듣고 있던 세찬이가

세찬 : 엄마 ‘쿨’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엄마 : 응~ 그건 멋지다는 뜻이야.

세찬 : 아~~

 

그리고 며칠이 지나 우리 식구는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

유난히 시식이 많았던 탓에 배가 고팠던 윤채와 세찬이가 시식만으로도 배가 불렀을 즈음 스파게티 시식 코너에서 작은 종이컵에 스파게티를 담아 주길래 윤채와 세찬이에게 먹으라고 들려 주었다.

둘이 카트에 앉아 스파게티를 맛나게 먹으면서 대화 중이다.

세찬 : 윤채야! 이거 정말 맛있다. 그치?

윤채 : 응~

세찬 : 엄마, 그런데 왜 저 아줌마는 스파게티를 이렇게 많이 줬어?

엄마 : 응, 윤채랑 세찬이 배고픈 것 알고 많이 먹으라고 주셨나 보다.

세찬 : (씨익 웃으며) 윤채야, 저 아줌마 정말 ‘쿨’하다 그치!

윤채 : (열심히 컵에다 코를 박고 먹으면서) 응~~ 쿨해. 쿨해.

 

 

2010년 4월 5일

 

어느 날 길을 걸어가던 윤채가 기분이 좋았는지 쫑알쫑알 수다를 떱니다.

 

“엄마 내가 꿈을 꿨는데 엄마, 아빠를 잃어 버린 거야. 그래서 아저씨한테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좀 찾아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우리 아빠 좀 찾아 주세요.

했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엄마, 아빠 전화 번호가 뭐니? 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 전화 번호는 아빠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우리 아빠 전화 번호는 엄마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했다”

 

띠요용~~~

 

이름 석자, 전화 번호 11자리 대신 단축 번호로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

 

 

문득 나는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7개가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 바뀐 어머니의 전화번호는 아예 까맣게 모르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전화기에 하나의 단축 번호로 저장되어 있겠지.

그도 아니면 기타 그룹 어느 한켠에 쳐박혀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긴장되면서 서글퍼 진다.

지인의 전화기에 가장 중요한 번호로 자리 잡고 싶은 욕망!!!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전부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손 때 묻은 가나다라 순 전화번호부가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게 될까?

아님 바코드를 저장하고 다닐지도....

 

 

 

 

2010년 4월 어느날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 던 윤채가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윤채 : 엄마, 엄마 모경이 언니는 정말 나쁘다. 나한테 막 ‘야’라고 해.

진짜 나쁘지?

엄마 : 그래? 그런데 모경이는 윤채보다 언니니까 그렇게 불러도 돼.

윤채 : 아니야, 내가 왜 ‘야’야! 나는 윤채니까 윤채라고 불러야지.

엄마 : 아....그렇구나. 넌 윤채지. 맞다. 윤채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윤 채라고 불러야 겠다. 우리 윤채, 정말 기분 나쁠 만도 하겠다.

 

가끔 나도 모르는 사이 급하게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할 때 ‘야’라는 말을 쓸 때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한 말투로 부를 때는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2010년 4월 10일

 

인혜 부부와 저녁을 먹고 돌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5학년인 쌍둥이 딸을 캐나다에 보내 놓고 뒤 늦게 신혼처럼 살고 있는 인혜부부가 조금은 부러웠다.

신랑 : 둘이서 재밌게 잘 살고 있네.

나 : 그치? 보기 좋지. 우린 언제 애들 다 키워서 떼놓고 우리끼리 오손 도손 사냐.....

 

가만히 뒤에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우리도 같이 좀 살자. 살어!

신랑, 나 : (순간 너무 놀라 마주보다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만다) 우하하하하

 

그래, 우리는 한 가족이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하지만 가끔 엄마는 아빠랑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단다.

미안해.....

 

 

2010년 4월 19일

 

한참 TV시청에 열을 올리던 윤채가 내게 물었다.

윤채 : 엄마 ‘정의’가 뭐야?

엄마 : ‘정의’ 음~~뭐라 할까?

세찬 : 나는 ‘정의’가 뭔지 아는데...

엄마 : 세찬이가 알고 있었어? ‘정의’가 뭔데?

세찬 : (씨익 웃으며) 지구를 지키는 게 바로 ‘정의’야.

엄마 : 맞다! ‘정의’란 바로 지구를 지키는 거다.

 

그래 세찬아 네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정의’가 살아 있다면 이 지구도 참 아름답게 지켜지겠지?

세찬이는 정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지구를 지키는 데 한 몫 하는 일꾼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세찬이가 좋아하는 파워레인져처럼........

 

2010년 4월 22일

 

세찬 : 이윤대, 이윤대!

엄마 : 세찬아, 왜 윤채를 자꾸 윤대라고 불러?

세찬 : 응, 옛날에 피터팬아저씨가 왔을 때 윤채가 비더밴이라고 불러서 내가 피터팬 아저 씨한테 이윤채를 이윤대로 부르라고 했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세단아, 세단아!

 

이름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보는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 살짝 아리송한 이름표 글씨 때문에 홍성매로 불렸던 적이 있었는데....

가끔 봉봉이 불러 주던 그 이름이 오늘따라 자꾸 귓가에 맴돈다.

 

 

2010년 6월 2일

 

국민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투표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헤이리를 찾았다.

프로방스와 딸기마을을 거쳐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세찬이와 윤채가 대화를 한다.

 

윤채 : 나 여기 외할머니랑 와 봤었어.

세찬 : 네가 언제 여기 할머니랑 와 봤냐? 할머니는 운전도 못하는데....

윤채 : 아니야. 외할머니랑 여기와서 놀다 집에 갔었어.

세찬 : 윤채아...지금 네가 상상력을 발휘하는거냐?

순간 침묵

 

엄마 : (반쪽을 쳐다 보며) ㅋㅋ 저 조그만 입에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놀 랍다. 그치?

 

 

 

2010년 6월 8일

 

퇴근해서 집에 돌아 오는 차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세찬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세찬 : 엄마!

엄마 : 응~~

세찬 : (힘 없는 목소리로) 나...윤채 오빠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 : (너무 놀라서...그러나 사실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해 봤음)왜?

세찬 : 윤채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막 때리고 자꾸 내 장난감을 가져가...

 

엄마는 세찬이의 고민이 무척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왜 안 그럴까? 나도 가끔은 윤채가 벅찰때가 있는데....백미러로 뒤에 앉은 윤채의 표정을 살핀다.

 

윤채 : (모르는 척, 방금 오빠한테서 빼앗은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엄마 : 세찬아! 하지만 이미 윤채는 세찬이의 동생으로 태어 났는 걸.

그건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가 없어.

세찬 : (깊이 고개 숙이며) 그래도 너무 힘든데...

윤채 :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늘 세찬이에게 동생을 보호해 주고 아껴주라고만 했다.

그동안 내색은 안했지만, 제 한 몸 지키기 힘든 6살 어린 아이에게 그런 임무는 세상을 다 짊어 진 듯 너무 힘들기만 했던 모양이다.

 

2010년 7월 어느 날

 

엄마에게 있어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

열심히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윤채가 소파 등받이 위에 위험하게 올라가 있다.

 

엄마 : (열심히 바닥에 앉아서 걸레질 하며) 아유, 지지배.... 거길 어떻게 올라갔니?

윤채 : (큰소리로 우하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참기름 바르고 올라왔지!!!!

엄마도 올라와 봐라!!!

 

그래, 네 눈엔 밑에서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는 엄마가 호랑이로 보였던 모양이구나...

당장 내려 오지 않으면 잡아 먹는다! 크앙~~~

 

 

 

2010년 8월 3일

 

 

요즘 일주일에 두 번 하마방에 오는 승호 형 승주가 아이들을 조금 괴롭히는 모양이다.

 

세찬 : 엄마! 또 승주가 미래랑 하연이랑 윤채를 괴롭히길래 내가 ‘너도 네 동생 괴롭히면 기분 좋냐?’ 라고 했어.

엄마 : 그래, 잘했네...계속 그렇게 얘기해 주면 승주도 금방 알아 듣고 잘 지낼꺼야.

세찬 : 그런데 승주가 ‘너, 나랑 결판내자!’ 그러는 거야!

엄마 :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세찬 : 난 그런 거 없으니까 너나 내라고 했어. 그런데 엄마. 결판이 뭐야? 난 그런거 없는 데...

엄마 : 음~~~~(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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