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5일 토요일

1. 왜 살까?

라고 묻자

삼치 : 최악의 대답이랑 그저 그런 대답 중에 골라봐
날샤 : 최악의 대답
삼치 : 못죽어서
날샤 : ㅠㅠㅠ 그럼 그저 그런 대답은 뭐야
삼치: 세상은 살만하니까



2. 방금 "우주의 꽃, 생명의 몸짓" 이라는 한일 장애우 협동공연을 보고 왔다.
 -> 함께하는 공연은 맨 마지막 노래부르기 밖에 없어 사실 '협연'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하나 아무리 가깝다 할지라도 바다건너 몸이 불편한 사람들끼리 장기간 공연연습을 하는게 오죽 쉬울까.
갈 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러닝타임은 3시간이나 되었다.

한국팀은 석문호흡 한무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국무용은 진하고 깊숙하다)
 합창 그리고 밴드공연을 하였고
일본에서 온 쇼난카메구미팀은 팬터마임을 보여주었다.

미카엘의 집이라는 복지회에서 온 밴드팀이 공연을 하는데 한 아이가 내 정도 또래되는 남자아이에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일 젊고 씩씩하고 패기가 넘쳐 -그리고 정신적인 장애는 갖고 있지 않아- 팀의 리더역을 하는 듯 보였다.

난 잠시 그가 시각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베이시스트가 되는 상상을 하였다.

그는 베이스를 아주 잘 쳤다.
여행을 떠나요 곡이 끝나자 조금 떨리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쉽게 칠 수 있게 베이스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곡들을 저희 수준에 따라서 편곡을 하며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럼 다음 곡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 눈물이 넘쳐흘렀다.
어떻게 저렇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라는 맘도 있었고
잠시나마 세계적인 베이시스트라는 명성으로 그의 삶이 구원될 수도 있을거라고 -얄팍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이어지는 일본팀의 팬터마임 공연에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특히 불이라는 제목의 부토춤. 마치 죽어있는 시체가 딱딱한 몸을 이끌고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두 분이 나와 춤을 췄는데 한 분은 비장애인이 한 분은 장애인이었다.

신체로 표현하는 것,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관객이 그 안에 있는 본질을 파악하게 되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끈질기게 진행되었던 공연은 뭐랄까. 치유음악을 보고온 느낌이랄까. 그들은 에너지가 없다기 보단 우리와 다른 에너지를 훨씬 많이 갖고있었다.
공연 중간에 문이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아."


3.그러고 보니 니체는 결국 자신의 삶의 마지막에 다다르자 미쳤다.
한 때는 니체가 미친 것이야 말로 위버멘시가 없는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삶의 모든 고통이나 스트레스의 압박을 견디며 살아온
대부분의 이가 위버멘시일 수도 있지 않을가 싶다.
삼치는 죽지못해 산다고 표현했지만
그것이야 말로 운명애 아닐까.

4.
"내게는 용기라고 불리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온갖 낙담을 남김없이 제거해온 용기가....
용기는 더 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는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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