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스트레칭
나는 열일곱에 마임프로젝트로 생을 만났다.
그 때 생 왈 너희는 어리니까 3개월만 하면 충분히 몸이 바뀔 수 있어
바야흐로 스물
삼년이 지나 만난 생은 나한테 옛날보다 더 안좋아진 것 같다했다
오기가 생겨서
몇 일전부터 정기적으로 스트레칭하고있다.
일단 스트레칭이나 뛰기로 몸에 땀을 빼고
골반 찢기, 다리 찢기를 하고 있는데
진짜 뒈질 것 같다.
죽어버릴 것 같아.. 황천길을 걷고 있
골반 찢을 때 누군가가
출산의 고통이 이렇대 라고 얘기하는 순간
아제길 애안나 생각했다
특히 골반 찢기는
거의 뭐랄까...
두렵다
무서워
...
뼈가 뽀가지는 것 같아....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가
1)벼워지고 싶다.
2)릴케는 여인에게 줄 장미꽃을 꺽다가 장미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죽었다.
3)어두운시간을
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내 감각이 깊이 묻어 있는 그 시간을 사랑하네.
낡은 편지속에서처럼 나는 그 속에서,
내 일상이 이미 체험되어 있는 것을 보네.
마치 전설처럼 멀고 취화되어 있네.
거기에서부터 나는 무한히 넓은 제2의 삶의 공간이
내게 있음을 알게 되네.
그리고 이따금 나는 무덤 위에
꿈을 채워주는 성숙한 나무가
바람결에 속삭이듯하며, 그 꿈은
지난날의 소년이 슬픔과 노래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네.
4)um den sich seine warmen wurzeln drangen
그 꿈의 둘레에 나무의 따뜻한 뿌리가 몰려있습니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지각
오랫만에 대참사
공연끝나고 긴장이 풀린것인지 뭔지.
정말 쿨쿨쿨쿨ㅋ뤀뤀ㄹ쿨쿨쿨쿨 자버렸다.
심지어 오전 5시 38분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서는
엇 시간 많이 남았네? ㅋㅋㅋㅋㅋㅋ 더자야지?
하고 10시에 일어났다.
하아... 나오는 생각은
쓰미마셍
쓰미마셍
죄송해요
엇미안..
미안해..
속으로는
아... 난 이정도 위인인가 ㅠㅠ
집에 날 깨워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같이 살기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애인도 없고....
룸메는 나보다 더 늦게일어나고....(자유분방한 영혼..)
날 물어서 깨워주는 강아지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정도로 생긴
발랄하고 촐싹맞은 강아지...
아니면..
이정도의 순종도 500%의 미소년과 함께라면....
아니면 나를 옥탑방으로 올려달라....
아니면 정부는 유럽과 일본에 설치되어 있다는 태양조명기기를 한국에도 설치해달라....
(그 곳에는 반지하까지 태양이 갈 수 있도록 반사기기가 설치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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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픈의 유행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환의 문자에도 -가 들어가 있다-
으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럼 오늘도 좋은하루-
아, 참 내일 지각하지 않는거 잊지마-
2009년 6월 2일 화요일
때쟁이가 때쟁이한테
참 담백하고 솔직하고 막가파인 너가 보고 싶을 때다.
그리워라.
난 아마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가 있는 듯 하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서로 파악할 수 있고 함께 거기까지 가보려 애쓰는.
그리고...
이제 우리 때쟁이짓 좀 그만하자...ㅠㅠ
어줍잖은 칭찬과 위로도 이제 그만... (그런거 이미 맘속으로는 다 파악하고 있잖아!)
그릉거 신경쓰는게 더 귀찮타..
(애인한테앵기던가.... 고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세상만사 돈들고 맘들고 몸드는 애인은 왜사귀는 것이랑가?풍걍...)
아코
옛날에 리사에게 제프가 남편이냐고 여쭤보니 그것이 아니라 파트너라고 심히 강조했다
애인과 파트너의 사이의 갭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얘기 하니까 히옥스가 나에게 그런거 여쭤보는 거 실례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냥 말을 말아야겠다....
아코....
2009년 6월 1일 월요일
노무현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 잘살자에 대해 고민했던 2009년 4월 9일의 주저리
강제철거 반대하는 구룡마을 주민....
모텔 '달방'서 혼자사는 초등생 혜정이...
뒤처진 분배, 추락하는 중산층
북로켓 발사
경제학 강의 듣다보면 지금의 경제불황이 '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조한은 항상 앞으로 더 살기 힘들어질것이라고 얘기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어만 가다는데...
약자들은 살던 마을에서 쫓겨난다는데....
(이럴 때 도시 르네상스라니 오세훈씹새끼)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없고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 불안한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같다.
후에 살아남을 사람들은 누굴까.
내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살아남을 순 없을까.
(난 무엇을해야할까)
오늘은 뉴스보면서 너무 슬펐다.
(가끔은 뉴스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F4 (Fiction, fusion, feeling, femininity)
요즘 인기 드라마인 ‘꽃보다 남자’의 꽃미남 4인방 F4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픽션(Fiction, 허구), 퓨전(fusion, 복합), 필링(feeling, 감각), 페머니너티(femininity, 여성성)의 F4 시대가 될 것이란 예언이다.
다수의 예언자들은 미래 세대에 대해 느낌과 감정에 약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길들여지기 쉬운 ‘필링세대’이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픽션세대’, 또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확대되면서 페머니너티의 세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시에 이 모든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연예인 누드 합성 사진은 이런 F4 현상과 맞물려 있다.
과거에도 연예인 합성 누드 사진이 범람했지만 지금처럼 인구에 회자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혼재되고 진실보다는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지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합성사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배우들이다. 문희준 등 남자 스타들의 합성사진도 있었지만 재미로 따다 붙인 패러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여성들은 성을 상품으로 한 점이 우려가 된다. 대부분 해외 포르노사이트 등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정교하게 합성해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뿌린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에 만연돼 있는 여성비하적 발상, 혹은 마초의 폐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어로 남자라는 뜻의 마초는 미국에 거주하는 중남미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통상 남성우월주의자를 일컫는다.
왜곡된 퓨전문화도 문제다.
퓨전문화는 원래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져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격을 무시하는 퓨전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송에서는 초상권과 관계없이 스타들의 얼굴을 마구 합성하기 일쑤다. 패러디 문화를 앞세우는 것은 좋지만 연예인들의 인격권과 초상권에 대한 주의가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현대사회로 갈수록 피해 현상만을 논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어떤 현상에는 그 현상을 만드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의 기저에는 무분별하고 획일화된 대중문화의 잘못된 전도가 한몫 거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자본 그리고 인간관계
요새 경제학자 중에서 레이건이 미국을 바꾸기 전에 케인스주의가 지배하던 몇 십 년 동안 미국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 쓴 <볼링 얼론(Bowling Alone)>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부터 혼자서 볼링하는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원자화를 말한다. 케인스주의가 살아 있을 때였다. 복지가 사람 생활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이런 인간관계를 사회자본이라고 부른다.
서울 인사동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혼자 왔다고 밥을 팔지 않았다. 1인분은 안 된다고. 그래서 나왔는데, 겁이 나 아무 집에도 못 들어가겠더라. 그래서 광화문까지 걸어와 식당에 들어갔다. 네 사람이 앉는 자리에 이미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데 그 옆에 앉으라고 했다. 다른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사회적 자본, 인생살이의 근본이 되는 자본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의 고도성장 논리가 이를 망가뜨렸다. 필연적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심이 좋아졌다? 이런 건 없다. 절대로 양립이 안 된다. 경제성장과 자본주의 논리가 인간과 인간, 개인과 개인을 무한경쟁 관계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하면, 개인이 가진 것이 많으면 외할머니가 살던 마을과 같은 이웃 간 교류가 있을 수 없다. 서로 궁핍한 상태에서 살아가야 서로 돕는다. 우리뿐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의 토착적 공동체에서 상부상조 관계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난은 절대로 배격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재산은 타자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관계 속에 존재하고, 내 인생이 윤택하다는 것은 내가 맺는 관계가 윤택한 것이다.
<시사in>
The wall
필크 플로이드의 영화 <The wall>은 학교를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묘사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거대한 기계 속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소시지가 되어 나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산업사회의 효율성만을 중시한 나머지 인간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미난하면서, "결국 우리 모두는 거대한 벽을 지탱하고 있는 한 개의 벽돌일 뿐"이라고 외친다. 핑크 플로이드의 영화가 만들어진 지 이십여 년이 흐른 오늘날 수많은 교육개혁가들이 이러한 획일적인 대량생산 방식의 교육 모델을 거부하면서 학교는 공장의 조립 라인이 아니며 진정한 배움은 학생 개개인의 욕구를 고려한 맞춤식 교육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에게 평생 학습의 의지를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졸업장의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분석의 상상력
도대체 이런 사진을 전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의 분노를 일깨우려고? 사람들을 '후회'하게 만들려고,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슬퍼지게 만들려고? 애도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제는 이 끔찍한 일들을 처벌할 수도 없을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꼭 이런 사진들을 봐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이미지들을 본다고 해서 우리가 더 선량해지는 것일까? 이 사진들이 정말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는 한것일까?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도 아니면 알고 싶어하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타인의 고통 / 수전손택
p. 140
Susan sontag
수전 손택은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 예술평론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그녀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숱한 별명과 명성을 얻었다.
1933년 1월 28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전 손택은 15세에 버클리대에 입학, 시카고대로 다시옮겨 대학생활을 시작한 뒤 17세에 결혼, 25살 때 하버드대 철학박사학위를 받아 각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맡는 등 세인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전 손택이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31세 되던 해(1964년)에 발표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두 편의 글 때문이었다.
당시는 마침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가 <소설의 죽음>을 선언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던 해여서,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한 손택의 두 에세이는 모더니즘의 종언을 선포한 피들러의 글과 더불어 1960년대 반(反)문화의 서장을 연 기념비적 선언문이 되었다.
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며,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을 주창한다. 손택은 그것을 '예술의 성애학'이라고 부르며, 해석을 위한 해석을 비판한다.
그녀에 의하면, 예술의 본질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인데,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해석은 예술에 대한 강간 행위가 된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
수전 손택의 '반해석론'은 <캠프에 대한 단상>에서도 계속된다. 그녀는 여기에서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는 전통관념을 비판하며, 비평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심미적인 체험을 제시한다.
'캠프'는 조악한 것, 인위적인 것, 과장된 것, 끔찍한 것에 대한 취미를 말한다. 그녀는 스스로 '캠프'라고 부른 반전통적, 반귀족적 문화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시대의 지성의 대변자로 등장했다. 그녀는 예술작품에 대한 과도한 분석을 경계했으며, '해석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수전 손택은 <화산의 연인>, <미국에서(In America)>등의 소설 외에도 사회과학사의 입장에서 해석한 <사진 이야기(On Photography)>등 여러 글을 저술했으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녀는 베트남전쟁의 허위,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을 폭로하는가 하면 미국 펜클럽회장으로 있던 88년에는 서울을 방문해 구속문인의 석방을 촉구하고 93년엔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기도 했다.
2002년 9월 미국의 9.11테러 1주년을 맞이해 수전 손택은 뉴욕타임스에 '진정한 전투와 공허한 은유'란 기고문을 실었는데, 그녀는 ""대테러전쟁은 암이나 빈곤, 마약과의 전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은유적' 전쟁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미 행정부가 전쟁을 선포한 것은 미국의 힘을 무한정 사용하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수전 손택은 2004년 12월 28일 백혈병으로 숨졌다.
첫 : 김혜순
첫
김혜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속에서 슬며시 스며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올 때 거기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 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어머니의 첫 젖 같은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속에 숨어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있을까
그 옛날 당신의 몸 속에서 뿜어지던
엄마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몸이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속으로 기러기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숨어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 이라고 부르른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긋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2008년 12월 5일 삶에 관한 주저리
요즘 들어서는 세상에 아주 다양한 노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 승리자가 된다거나 나락으로 떨어져 패배자가 되다는 많은 이들의 말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사실 일 수도 있다. 사회가 이런 경쟁체제가 된 것은 오래 된 일이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사실 알고 보면 모든 것은 순환하는 것이 아닐까.
의사, 선생님, 청소부, 대통령, 노점상, 화이트칼라. 이런 심심한 삶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다른, 샐 수도 없이 다양한 삶이 살았다가 죽어지는 것이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지지 않으면 필 수 없다. 모든 건 시작이자 끝이며 끝이고 시작이다. 내가 죽어야 다른 이들의 생명이 피고 모든 것은 왔다가 간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부러워한다던가 시기할 필요가 없다. 많은 곳에서 자꾸 나를 비교하고 높은 곳으로 가라고 요구하지만 그곳에 정상이 있기나 할까.
그저 내 자신에게 충실하며, 내 노선을 충실히 걸어가자.
앨리너 파전의 말처럼 세상에는 온갖 것들이 필요한 법이다
2007년 10월 1일 한계에 관한 주저리
한계를 봤기 때문에 이제는 나를 채워나가는 것 또한 열중해야 한다. 나를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까?
가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고 바라지만......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고 자꾸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가 지금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것은 채워지기 힘들겠지.
홀로서기는 힘들다.
-
아까 한계를 본다고 이야기 했는데 실제로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이 본다. 그건 주위에서도 나에게 쉴새없이 말하고 나도 문득문득 느낀다. 행복하다고 해야겠다. 그것 덕에 나는 끊임없이 도전 할 수 있고 행동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성장한다.
죽을 때까지 나는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완벽하기를 노력하는 것과,그냥 완벽하기를 노력하는 것은 다르다. 완벽할 수 없는 나라서 행복하다.
+어쩜 어떤 사람들은 죽음으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닐까?
2007년 9월 28일 무대에 관한 주저리
내가 무대를 사랑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자기몰아넣기에 있다.
이 무대에서 이것을 해야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일단 그곳으로 날 몰아넣는다.
상당히 자극적이며 순간의 찰나이다. 끝없는 갈증에 타있는 것 같고 뜨거운 불속에 있는 듯 하면서도 등뒤와 가슴으로 얼음조각들이 흘러내린다.
그 후 결정이 난다. 난 이미 그 목표를 넘어있다. 혹은 넘어있지 않다.
결과가 어떻든 그 찰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나는 그것을 에너지삼아 다른 무대가 오면 또 한번 날 몰아넣는다.
완벽한 올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2008년 12월 10일의 주저리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먹고 살기는
어떻게보면 굉장히 단순한 명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보면 모호한 꼬인 명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이며 먹고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인지 파고 들어가면 많은 가치들의 경계들이 모호해지고 이상적인 삶은 먼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상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아니 사실 그들의 맘 속으로 들어가 보면 환경적으로는 이상적이나 그 외의 가치나 관계, 소통 등 자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끊임 없이 그의 이상적인 삶을 파괴하려 들것이다.
60억 인구가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니 지구상에 그것보다 적은 량의 인간이 산다하여도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성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없어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보노보에 관한 글을 보면서 이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계사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평상시에 평등한 관계, 긴장된 관계를 싸움이 아닌 섹스로 푸는 종족. 얼마나 평화롭고 조화로운 종족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지금 인간은 보노보나 몇 만년전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보노보, 침팬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고 그 고기를 사기 위해 많은 동물들이 죽고 그 동물들은
게다가 인간의 커다란 역사는 "평화-폭력-살인-전쟁-핵전쟁-?"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신기하게도) 끊임없이 평등하려고 애쓰며 자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만인을 향한 투쟁이라고 하지만 법이나 규칙의 초기 시작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삶에 관한 끝없는 의심이나 아픔, 배신감, 두려움, 먹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죽을때까지 있고 설령 내가 팔십살이 된다고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인간이기에 친구나 동료처럼 갖고 가야할 내면의 나이다.
우리는 항상 100%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이렇게 풀고 가야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은 끝이없지만 내 존재 자체는 세상의 한 톱니바퀴로 존재할 것이며 나의 생각은 세상 속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