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일 월요일

2008년 12월 10일의 주저리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먹고 살기는
어떻게보면 굉장히 단순한 명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보면 모호한 꼬인 명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이며 먹고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인지 파고 들어가면 많은 가치들의 경계들이 모호해지고 이상적인 삶은 먼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상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아니 사실 그들의 맘 속으로 들어가 보면 환경적으로는 이상적이나 그 외의 가치나 관계, 소통 등 자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끊임 없이 그의 이상적인 삶을 파괴하려 들것이다.

 60억 인구가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니 지구상에 그것보다 적은 량의 인간이 산다하여도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성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없어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보노보에 관한 글을 보면서 이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계사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평상시에 평등한 관계, 긴장된 관계를 싸움이 아닌 섹스로 푸는 종족. 얼마나 평화롭고 조화로운 종족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지금 인간은 보노보나 몇 만년전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보노보, 침팬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고 그 고기를 사기 위해 많은 동물들이 죽고 그 동물들은

게다가 인간의 커다란 역사는 "평화-폭력-살인-전쟁-핵전쟁-?"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신기하게도) 끊임없이 평등하려고 애쓰며 자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만인을 향한 투쟁이라고 하지만 법이나 규칙의 초기 시작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삶에 관한 끝없는 의심이나 아픔, 배신감, 두려움, 먹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죽을때까지 있고 설령 내가 팔십살이 된다고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인간이기에 친구나 동료처럼 갖고 가야할 내면의 나이다.

 우리는 항상 100%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이렇게 풀고 가야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은 끝이없지만 내 존재 자체는 세상의 한 톱니바퀴로 존재할 것이며 나의 생각은 세상 속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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