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사무엘 베케트 : krapp's last tape
#Krapp's Last Tape
베케트 작품들 중 유일한 1인극이며, 주인공 크랩이 30년 전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테잎을 재생함으로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기억과 현재심리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한 당혹감을 어찌할 바 모르는 크랩. 목청을 가다듬고 크랩은 마지막이 될 테잎을 녹음한다. 결국 그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크랩의 이 마지막 테잎의 마지막 구절만은 그의 남은 생과 일치하게 되리라.
"내 생애의 가장 좋은 날들은 지나가버린 것 같다.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는데. 그러나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겠다. 지금 내게 그때의 그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님에랴.
그렇다, 나는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다."
(크랩은 꼼짝도 않은 채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테이프만 돌아가고 있다.)
#<침묵과 소리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中에서 - 권혜경 지음, 도서출판 동인
제2장 기억과 글쓰기
1. 크랩의 마지막 테이프 : 말의 기록과 반복
............................
크랩은 말의 기록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말의 헛된 반복(futile repetition)을 듣는 크랩의 심정은 곧
"모든 언어는 언어의 과잉이다. (all language is an excess of language, Beckett 1983 107)"
이라고 말한 모란(Moran)의 인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크랩의 귀착지가 침묵임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침묵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강박적인 이상에 희생당한 삶의 실패자로서의 크랩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과 말의 헛됨을 인식한 투명한 응시(staring)의 소유자로서 크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그가 마지막 부분에 녹음하는 테이프는 아마 그의 마지막 테이프가 될지도 모른다. 유한한 인간의 삶, 즉 시간과의 속절없는 싸움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자신의 인생을 말로써 기록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집착했었던 "껍질에서 알맹이를 골라내기"에 부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인생 중 의미깊다고 생각되는 항목들을 기록해두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침식당한 크랩의 기억력은 그가 생각한 원래의 의도를 따라잡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유한함을 더욱 더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히려 노년의 크랩을 보다 사로잡는 것은 '껍질'에 불과했던 주변부 기억들이며, 그는 젊은 시절에 갖지 못했던 통찰력으로 알맹이와 껍질, 중심의 기억과 주변부의 기억드을 모두 아우르는 확대된 인식의 폭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헛된 반복"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에게 남겨진 것은 여전히 그의 기억과 말하기, 곧 글쓰기인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목소리를 기록하고 또 과거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하여 재생함으로써 편집자, 더 나아가 작가의 기능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백자대호 - 김원용
이론을 초월한 백의 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白衣의 민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 古今未有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
강 - 황인숙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비에도 지지 않고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 雨ニモマケズ
-미야자와 켄지 - 宮沢賢治(1896~1933)
雨ニモマケズ 비에도 지지 않고
아메니모 마케즈
風にもマケズ 바람에도 지지 않고
카제니모 마케즈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 않는
유키니모 나츠노 아츠사니모 마케누
丈夫ナカラダヲモチ 튼튼한 몸을 가지고
죠오부나 카라다오 모치
慾ハナク 욕심은 없이
요쿠와 나쿠
決シテ怒ラズ 결코 화내지 않으며
켓시테 오코라즈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이츠모 시즈카니 와랏테이루
一日二玄米四合ト 하루에 현미 네 홉과
이치니치니 겐마이 욘고우토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된장과 얼마간의 채소를 먹으며
미소토 스코시노 야사이오 타베
アラユルコトヲ 모든 일에
아라유루 코토오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に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지분오 칸죠우니 이레즈니
ヨクミキキシワカリ 잘 보고 들어 깨닫고
요쿠 미키키시 와카리
ソシテワスレズ 그리고 잊지 않으며
소시테 와스레즈
野原ノ松ノ林ノ陰ノ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
노하라노 마츠노 하야시노 카게노
小サナ萱ブキノ小屋二ヰテ 작은 짚으로 인 초가에 살면서
치이사나 카야부키노 코야니 이테
東二病気ノコドモアレバ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히가시니 뵤우키노 코도모 아레바
行ッテ看病シテヤリ 가서 간호해 주고
잇테 칸뵤우시테 야리
西二ツカレタ母アレバ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니시니 츠카레타 하하 아레바
行ッテソノ稲ノ束ヲ負ヒ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잇테 소노 이나노 타바오 오히
南二死二サウナ人アレバ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미나미니 시니소우나 히토 아레바
行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일러주고
잇테 코와가라나쿠테모 이이토 이히
北二ケンクワヤソショウガアレバ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키타니 켄카야 소쇼우가 아레바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부질 없으니 그만두라 이르고
츠마라나이카라 야메로토 이히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며
히데리노 토키와 나미다오 나가시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걸어
사무사노 나츠와 오로오로 아루키
ミンナニデクノボウトヨバレ 모두에게 등신이라 불리우고
민나니 데쿠노보우토 요바레
ホメラレモセズ 칭찬도 받지 못하고
호메라레모 세즈
クニモサレズ 골칫거리도 되지 않는
쿠니모 사레즈
サウイフモノニ 그런 사람이
소우이우 모노니
ワタシハ 나는
와타시와
ナリタイ 되고 싶다.
나리타이
2010년 9월 3일 금요일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물값이 6만 3천원이 나왔다.
밀렸던 생활비까지 합치면 15만원이나 된다.
속이 뒤틀려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잤다.
마사지 티켓 지르지 말 것을 그랬다.
지금도 수도꼭지는 정신나간 소가 침 질질 흘리는 것 마냥 물 뚝뚝 흘리고 있겠지.
2010년 8월 26일 목요일
시
내 심장은 붉다.
널 보면 고 붉은 것이 복어처럼 부풀어오른다.
팔딱팔딱 튀어오르는 것은 꼭 괴기 아가미.
뜨겁게 흐르는 - 머리 휘감고 다시 돌아 온 푸른 피.
아가미에서 슬금슬금 베어나오는 것은 비린내.
비린내 안에 기억하려해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은 냄새.
보송한 빨래더미에 굵게 자라난 사과나무.
그곳에 흐르는 달콤한 사과즙.
널 만날 때면 복어괴기아가미비린내사과즙에 머리는 자지러진다.
-
콩
딱
콩
딱
너에게서 벗어나려고 콩
자석에 이끌리듯 딱
콩딱
콩딱
콩떡
떡콩
결국은 콩고물.
어디 너한테서 콩고물 하나 안떨어지나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콩딱콩떡 내마음.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일기
열두시 전에 침대에 누웠는데 계속 말똥말똥
한시간정도 누워있다가 수면유도음악틀고 누웠는데도 계속 말똥말똥
물 벌컥벌컥 마셔도 TT 몇 일째 이런다.
오늘도 두시간째 잠을 못들어서 결국 일년만에 수면유도제를 다시 들었다. 다행히 한 알이 남아있었다. 예전엔 두알씩 먹었었는데 한알로 되려나 모르겠다. 내일 비상용으로 더 사둬야겠다.
사실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정신은 멀쩡한데 다리부터 무거워지는 것이 아주 불쾌하다.
게다가 중간에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던데...
좀 푹 잤으면 좋겠다.
왜 잠을 못자는 걸까?
시원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일이 찝찝했기 때문일까.
-
호두 생각이 난다.
호두가 없어서 그런지 못해준 일만 새록새록
더 간식 사주고 더 쓰다듬어 줄 것을 그랬다.
이리 저리 팔랑팔랑 헥헥헥헥 온곳을 쏘아다니며 즐겁게 지내면 좋을텐데.
호두 보고파라.
-
일년전 녀자들 생각도 난다.
하짱 생각도 난다.
촌닭들도 생각난다.
보고파라.
윽 밤의 넋두리는 처량하군.
-
슬슬 무거워지네. 자러가야지.
2010년 8월 4일 수요일
마주이야기
2009년 10월 10일
엄마의 결혼 반지를 보며
세찬 : 와~ 예쁘다.
엄마 : 세찬이도 이다음에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 엄마가 이렇게 예쁜 반지 사 줄께~~
세찬 : (부끄러운 듯 웃으며 살짝 앙탈을 부리듯) 싫어엉~~
엄마 : 뭐가 싫어? 엄마 아빠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도 해서 세찬이랑 윤채를 낳았잖아.
세찬 : (한참 생각하다가) 어딜 가다가 만났는데?
엄마 : 띠요용~~~
2009년 11월
세찬이와 윤채랑 함께 차를 타고 집에 돌아 오는 길이었다.
윤채 : 엄마! 불 좀 켜줘.
엄마 : 왜?
윤채 : 코딱지 파게~~
엄마 : 엄마 운전하는 데 방해 되니까 불 켜면 안돼.
세찬 : (얼른 머리위에 있는 실내등을 켜주며) 내가 켜 줬어.
윤채 : (낄낄 거리며 웃는다) 하하하하 코딱지 다 팠다. 휴지 줘.
뒷처리 다하고 한참을 달리는데..
윤채 : (자지러지게 웃으며 창밖을 가리킨다) 하하하하! 엄마 쟤도 코딱지 팠나봐!
윤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실내등이 켜진 자동차 한대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2009년 7월 27일
낮에 하마방에 당당하게 입성하고 돌아온 세찬이에게 엄마가 물었다.
(하마방에 가면 주혁이랑 칼싸움도 하며 놀 수 있다고 꼬셔 두었던 터라.....)
엄마 : 세찬아! 하마방에서 주혁이랑 칼싸움하고 놀았어?
세찬 : 아니? 칼이 없었어.
엄마 : 낮에 살짝 보니까 칼 같이 긴 것을 만들어서 놀고 있던데, 그거 칼 아니었어?
세찬 : (한참 생각하더니 씩 웃는다) 그거! 그건 새로운 발명품이야.
엄마 : 발명품? 무슨 발명품?
세찬 : 응, 나쁜 아이를 착하게 만들어 주는 발명품.
엄마 : (의아해 하며) 누굴 착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세찬 : (의기양양하게) 영수!
하루 종일 열심히 뛰어 다니느라 열매를 힘들게 만들었던 영수가 세찬이 눈에는 나쁜 아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2009년 6월 28일
엄마, 아빠, 오빠랑 백화점에 간 윤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기 직전.
윤채의 안전벨트는 항상 엄마만 풀어 줄 수 있다. 아빠가 풀어 주는 것을 무슨이유인지 윤채는 너무 너무 싫어한다. 이날도 역시 아빠가 윤채의 안전벨트 한 번 풀어주려고 한껏 긴장한채 미소를 띠며 윤채에게 다가간다. 엄마랑, 세찬이도 윤채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런데...
윤채가 오늘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빠 : (살짝 눈치보며 윤채가 앉은 쪽의 문을 열고) 자, 내리세요.
윤채 : (웃으며 아빠를 바라본다) 자기야!!! 나 자기가 좋아지려고 해.
아빠, 엄마, 세찬 : 허걱!
그렇게 순식간에 나의 자기는 윤채의 자기가 되어버렸다.
2010년 3월 19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의 대화
세찬 : 윤채야 우리 말놀이 하자. 내가 먼저 문제 낼게. 맞춰봐.
윤채 : 그래
세찬 : 이건 ‘이’자로 시작해. 이건 이름이야. 말을 되게 안들어.
윤채 : 으음. 알았다. ‘이녀석!’
세찬 : 응? 이윤챈데.... 그럼 이거 맞춰봐.
이번엔 ‘데’자로 시작하는 거야. 앞에서 막 기타를 두드려. 그러면 우리가 막 춤을 춘다. 뭐게?
(세찬이의 의도는 두들기타를 가르쳐 줬던 ‘데자부’였다)
윤채 : 으음. ‘대~리~ 운전!’
엄마 : 하하하하하! 대박이다.
2010년 2월
반쪽과 함께 뒤 끝 없는 성격의 윤채를 보며 “윤채는 참 쿨해” 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듣고 있던 세찬이가
세찬 : 엄마 ‘쿨’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엄마 : 응~ 그건 멋지다는 뜻이야.
세찬 : 아~~
그리고 며칠이 지나 우리 식구는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
유난히 시식이 많았던 탓에 배가 고팠던 윤채와 세찬이가 시식만으로도 배가 불렀을 즈음 스파게티 시식 코너에서 작은 종이컵에 스파게티를 담아 주길래 윤채와 세찬이에게 먹으라고 들려 주었다.
둘이 카트에 앉아 스파게티를 맛나게 먹으면서 대화 중이다.
세찬 : 윤채야! 이거 정말 맛있다. 그치?
윤채 : 응~
세찬 : 엄마, 그런데 왜 저 아줌마는 스파게티를 이렇게 많이 줬어?
엄마 : 응, 윤채랑 세찬이 배고픈 것 알고 많이 먹으라고 주셨나 보다.
세찬 : (씨익 웃으며) 윤채야, 저 아줌마 정말 ‘쿨’하다 그치!
윤채 : (열심히 컵에다 코를 박고 먹으면서) 응~~ 쿨해. 쿨해.
2010년 4월 5일
어느 날 길을 걸어가던 윤채가 기분이 좋았는지 쫑알쫑알 수다를 떱니다.
“엄마 내가 꿈을 꿨는데 엄마, 아빠를 잃어 버린 거야. 그래서 아저씨한테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좀 찾아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우리 아빠 좀 찾아 주세요.
했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엄마, 아빠 전화 번호가 뭐니? 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 전화 번호는 아빠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우리 아빠 전화 번호는 엄마 전화기로 1번 한 번만 누르면 되요. 했다”
띠요용~~~
이름 석자, 전화 번호 11자리 대신 단축 번호로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
문득 나는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7개가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 바뀐 어머니의 전화번호는 아예 까맣게 모르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전화기에 하나의 단축 번호로 저장되어 있겠지.
그도 아니면 기타 그룹 어느 한켠에 쳐박혀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긴장되면서 서글퍼 진다.
지인의 전화기에 가장 중요한 번호로 자리 잡고 싶은 욕망!!!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전부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손 때 묻은 가나다라 순 전화번호부가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몇 개의 전화 번호를 외우게 될까?
아님 바코드를 저장하고 다닐지도....
2010년 4월 어느날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 던 윤채가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윤채 : 엄마, 엄마 모경이 언니는 정말 나쁘다. 나한테 막 ‘야’라고 해.
진짜 나쁘지?
엄마 : 그래? 그런데 모경이는 윤채보다 언니니까 그렇게 불러도 돼.
윤채 : 아니야, 내가 왜 ‘야’야! 나는 윤채니까 윤채라고 불러야지.
엄마 : 아....그렇구나. 넌 윤채지. 맞다. 윤채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윤 채라고 불러야 겠다. 우리 윤채, 정말 기분 나쁠 만도 하겠다.
가끔 나도 모르는 사이 급하게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할 때 ‘야’라는 말을 쓸 때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한 말투로 부를 때는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2010년 4월 10일
인혜 부부와 저녁을 먹고 돌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5학년인 쌍둥이 딸을 캐나다에 보내 놓고 뒤 늦게 신혼처럼 살고 있는 인혜부부가 조금은 부러웠다.
신랑 : 둘이서 재밌게 잘 살고 있네.
나 : 그치? 보기 좋지. 우린 언제 애들 다 키워서 떼놓고 우리끼리 오손 도손 사냐.....
가만히 뒤에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우리도 같이 좀 살자. 살어!
신랑, 나 : (순간 너무 놀라 마주보다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만다) 우하하하하
그래, 우리는 한 가족이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하지만 가끔 엄마는 아빠랑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단다.
미안해.....
2010년 4월 19일
한참 TV시청에 열을 올리던 윤채가 내게 물었다.
윤채 : 엄마 ‘정의’가 뭐야?
엄마 : ‘정의’ 음~~뭐라 할까?
세찬 : 나는 ‘정의’가 뭔지 아는데...
엄마 : 세찬이가 알고 있었어? ‘정의’가 뭔데?
세찬 : (씨익 웃으며) 지구를 지키는 게 바로 ‘정의’야.
엄마 : 맞다! ‘정의’란 바로 지구를 지키는 거다.
그래 세찬아 네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정의’가 살아 있다면 이 지구도 참 아름답게 지켜지겠지?
세찬이는 정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지구를 지키는 데 한 몫 하는 일꾼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세찬이가 좋아하는 파워레인져처럼........
2010년 4월 22일
세찬 : 이윤대, 이윤대!
엄마 : 세찬아, 왜 윤채를 자꾸 윤대라고 불러?
세찬 : 응, 옛날에 피터팬아저씨가 왔을 때 윤채가 비더밴이라고 불러서 내가 피터팬 아저 씨한테 이윤채를 이윤대로 부르라고 했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채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채 : 세단아, 세단아!
이름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보는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 살짝 아리송한 이름표 글씨 때문에 홍성매로 불렸던 적이 있었는데....
가끔 봉봉이 불러 주던 그 이름이 오늘따라 자꾸 귓가에 맴돈다.
2010년 6월 2일
국민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투표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헤이리를 찾았다.
프로방스와 딸기마을을 거쳐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세찬이와 윤채가 대화를 한다.
윤채 : 나 여기 외할머니랑 와 봤었어.
세찬 : 네가 언제 여기 할머니랑 와 봤냐? 할머니는 운전도 못하는데....
윤채 : 아니야. 외할머니랑 여기와서 놀다 집에 갔었어.
세찬 : 윤채아...지금 네가 상상력을 발휘하는거냐?
순간 침묵
엄마 : (반쪽을 쳐다 보며) ㅋㅋ 저 조그만 입에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놀 랍다. 그치?
2010년 6월 8일
퇴근해서 집에 돌아 오는 차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세찬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세찬 : 엄마!
엄마 : 응~~
세찬 : (힘 없는 목소리로) 나...윤채 오빠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 : (너무 놀라서...그러나 사실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해 봤음)왜?
세찬 : 윤채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막 때리고 자꾸 내 장난감을 가져가...
엄마는 세찬이의 고민이 무척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왜 안 그럴까? 나도 가끔은 윤채가 벅찰때가 있는데....백미러로 뒤에 앉은 윤채의 표정을 살핀다.
윤채 : (모르는 척, 방금 오빠한테서 빼앗은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엄마 : 세찬아! 하지만 이미 윤채는 세찬이의 동생으로 태어 났는 걸.
그건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가 없어.
세찬 : (깊이 고개 숙이며) 그래도 너무 힘든데...
윤채 :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늘 세찬이에게 동생을 보호해 주고 아껴주라고만 했다.
그동안 내색은 안했지만, 제 한 몸 지키기 힘든 6살 어린 아이에게 그런 임무는 세상을 다 짊어 진 듯 너무 힘들기만 했던 모양이다.
2010년 7월 어느 날
엄마에게 있어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
열심히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윤채가 소파 등받이 위에 위험하게 올라가 있다.
엄마 : (열심히 바닥에 앉아서 걸레질 하며) 아유, 지지배.... 거길 어떻게 올라갔니?
윤채 : (큰소리로 우하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참기름 바르고 올라왔지!!!!
엄마도 올라와 봐라!!!
그래, 네 눈엔 밑에서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는 엄마가 호랑이로 보였던 모양이구나...
당장 내려 오지 않으면 잡아 먹는다! 크앙~~~
2010년 8월 3일
요즘 일주일에 두 번 하마방에 오는 승호 형 승주가 아이들을 조금 괴롭히는 모양이다.
세찬 : 엄마! 또 승주가 미래랑 하연이랑 윤채를 괴롭히길래 내가 ‘너도 네 동생 괴롭히면 기분 좋냐?’ 라고 했어.
엄마 : 그래, 잘했네...계속 그렇게 얘기해 주면 승주도 금방 알아 듣고 잘 지낼꺼야.
세찬 : 그런데 승주가 ‘너, 나랑 결판내자!’ 그러는 거야!
엄마 :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세찬 : 난 그런 거 없으니까 너나 내라고 했어. 그런데 엄마. 결판이 뭐야? 난 그런거 없는 데...
엄마 : 음~~~~(진땀)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100726
오늘은 인셉션 보고 자는 것이 하루종일의 일정이었습니다. 띵까띵까.
인셉션 보면서 아이 가슴떨려하는 것이 잠자면서도 나타났습니다.
총 쏘는 소리에 벌떡 깨지 않나...훼훼훼훼훼훼
참 침투하기 쉬운 것이 지금 나의 맘인가 봅니다...훼훼훼훼훼훼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단어
천박한 시대
-88만원
-부끄러움을 아는 것
-공동체의 상실
-천개의 고원
일상성
-자기성장 vs 자기발전 vs 자기 고용
연어집단
-앎을 통한 독립적인 공간 구축->자존감
얼마전에 왕양이 배움그룹(?)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반이다 팀을 보면서 우리 집 한칸을 작업실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어제와 오늘의 행보

어제 토요일 수지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 갔다.
연대생들과 담이 참여하고 있는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그쪽으로 한달동안 인턴을 간다고 해서 나도 졸졸 따라간다고 이야기 한 것이 어제가 되서야 지켜졌다.
성미산마을 못지 않은 마을의 분위기에 한껏 기분좋아져서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왔다.
200여명이 되는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아이들, 어른들 할 것없이 밤 늦게까지 책보고 놀고 영화보고 시 읽고. 참으로 어여쁜 장면들이 이어졌고 때문에 잠을 쉬 들 수가 없었다.


만화 닥터 노구찌, 영화 개청춘(개청춘을 보고 나서 인턴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박터지는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개청춘의 문신한 청년은 역시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몇마디 오고 간 뒤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난 그들이 소위 스카이라인에 들었기 때문에 할말이 없는 것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왕양과 금산과 뿡이와 리사가 이리 절실할 줄이야 TT)), 요시노 이발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간다(한 세번째 보는데 역시나 엔딩장면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우에노 주리의 스파이 행보는 마지막까지 잘 지켜진 듯 하다) 를 주구장창 보다가 여섯시 넘어서 슬쩍 빠져나왔다.

집에와서 잠깐 잠을 청한뒤
등산친구 동현오빠를 만나 인왕산에 올랐다.
관악산보다 훠얼씬 길도 잘닦여 있고 고도도 낮아서 슬렁슬렁 갔다가 내려오기 딱 좋은 산이었다.
내가 스르슥슥 힘 넘치게 산 올라가자 동현오빠 하는 말이
이십대 때는 생각없이 올라가고 삼십대 때는 사십대 때는 내려갈 때를 생각하면서 올라가게 된대
근데 힘든데 뭔 생각을 하냐

아 먹고 싶다는 건 아닌데 홍제동에 진짜 맛있는 순대집 있어요.
라고 하자 오빠가 장난치듯 대답했다. 어 그래? 혼자가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겨울에 한번 더 인왕산 와서 내려갈 때 순대국 먹고 가요. 라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난 왜 기약없는 약속이 좋을까.

(산에서 내려와서는 설레임을 사서 쭉쭉 빨면서 지하철까지 내려갔다.)
산줄기 떨어지는 곳이 홍제동이라 삼치와 어머님 생각이 났다.
삼치에게 전화를 했다.
나 간다
-어디?
니네 집에
-왜? 지금 어딘데?
너희 집 맥도날드 앞에
-그럼 나 나간다.
그럼 나 안가.
-ㅋㅋ 알았어.
라는 정내미 떨어질법한 전화를 한뒤
동현오빠 먼저 보내고
나는 커피 싸들고 정겨운 삼치집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찾아온 나를 보고 어머님은 실실 웃으시며 뭐야? 이거. 라며 반겨주셨다.


나 대신 먼저 와있는 춘봉여사.
(어여쁜 길냥인데 가끔 삼치집에서 신세를 진다고 한다.)
오랫만에 어머님 아버님 뵈서 기분이 좋아 깐풍기 세트+짬뽕 두개를 쐈다.
고추장 좀 담아주랴? 라고 하는 어머님의 말씀에 냉장고에 몇년째 쳐박혀 있는 순창고추장이 떠올라 손치레를 치며 나왔다.
이틀동안 생각지 않게 좋은 사람들 만나 배부르고 따시게 잘먹고 팽팽 놀며 주말을 보냈다.
아이 좋아라.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하자에서 있었던 [심신보양잔치] 기획 2팀과 10분 급조 공연을 했습니다.
오글거림이 컨셉인 사회적기업이 자라네
심은 보양되었으나 신은 보양 안되네요.
초계탕을 먹어도 힘 안나요.
에어콘은 8월 2일에야 도착....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공부도 못하는 XX가 건방지게..."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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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같은 체벌 금지 정책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심지어 인천 교육청은 서울 교육청의 금지 정책과 달리 '체벌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는가 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교총은 "체벌 금지가 교사들을 교육적 방관자로 머물러 있으라고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교과부는 "체벌 금지는 초중등교육법과 충돌하고 학교규칙 제정에 상당부분 자율권을 가진 교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법리적 해석까지 내놓았다. 이쯤 되면 체벌 금지 정책을 내린 서울교육청이 대단히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이걸 체벌이라고 하나? 구타라고 해야 하나?
80년대 초반에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미혼이었는데 체육 담당 선생님답게 체구가 당당했다. 그리고 키가 140센티미터도 되지 않은 우리반 아이들은 매일 같이 체벌에 시달렸다.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자기 책상 주변에 종이 쪼가리 하나 떨어져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도 아니면 종례시간에 들어서는데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 그 당시 선생님이 사용한 무기는 박달나무로 만든 하키 스틱이었다. 학교에서 육성한 체육부가 하키부여서 하키 스틱이 늘 체육실에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 맞으면 그 여린 엉덩이가 크게 출렁거렸고 두 대를 맞으면 감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맞았고 하루 하루를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보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불과 14살의 어린 아이에 불과한 우리들을 선생님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때렸을까? 정말 우리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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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선생님은 아침에 술냄새가 나면 종종 그렇게 이유 없이 때렸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소위 '양담배 사건'이었다.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양담배가 수입 개방되었다. 그러자 당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양담배 소비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그런데 마침 당시 과목 담당 선생님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양담배가 비춰 보였다.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양담배 태우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민망한지 처음엔 선생님이 웃으며 "뭘 그런 걸 말하냐"고 했다. 아이들이 따라 배시시 웃었다. 상황은 그 후에 돌변했다. 갑자기 지적한 학생을 나오라고 하더니 느닷없이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었다.
"공부도 못하는 XX가 어딜 건방지게... 내가 담배를 피우던 말던 네가 뭔데 참견이냐. 너 이 XX. 담배 피지? 그러니까 양담배인지 아닌지 알지." 등등등. 양담배를 지적한 학생은 처참하게 맞았고 피를 흘리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묻고 싶다. 이것이 체벌인지, 아니면 폭력인지. 그 선생님은 지금도 현직에서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체벌에 숨어있는 차별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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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못하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지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구나 체벌은 필연적으로 차별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맞는 아이가 따로 있고 같은 매를 맞아도 강도가 다르다고 주장하면 주관적일까.
다시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 재학 당시의 일이다. 한 아이와 다투게 되었다. 상대방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실내화를 바꿔신는 나의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후 한 덩어리가 되어 흙바닥에서 엉켜있는 것을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나는 상대방 아이가 이유없이 머리를 때렸다고 일렀다. 하지만 상대방 아이는 정말이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도 못했다. 곧이어 처벌이 내려졌다. 선생님은 지나가는 아이가 들고가던 알루미늄 쟁반의 둥근 바닥면으로 상대방 아이 머리를 '쟁반 노래방'의 그것처럼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한 대 때렸다. 그 다음 차례는 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었다. 같은 처벌일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선생님은 쟁반을 세우더니 각으로 아무지게 한 대 때렸다.
어이가 없었다. 울었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 울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떠 오르지 않았다. 그 아이 아버지가 큰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우리 학교 학부모회 회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내가 당한 차별을 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서럽던 기억은 삼십 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 딱지다.
학생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체벌은 군대의 얼차려처럼, 자백을 요구하기 위한 경찰의 고문처럼 없어져야 할 야만적인 문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면 필자는 원칙적인 답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 학생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교사는 이러한 실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교육은 실수하는 아이를 다시 세우는 반복 행위이며 교사와 부모는 실수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무한 책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체벌을 배제한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내 아이가 맞는 것은 안 되면서 일반적인 체벌은 필요하다는 이중적인 학부모의 자세를 이번 기회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제각각 학부모인 교사들도 손쉬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제압하는 체벌의 유혹을 끊고 아이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진지한 고민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향기나는 문구가 교육현장에서는 왜 안 된다고만 하는가? 서울 교육청의 체벌금지 정책이 반드시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100721
밤.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
한 남자가 씨발씨발 거리면서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제법 큰 목소리로 혼자 궁시렁거렸다.
아 씨발 내가 분명히 아까 오전에 계산을 했단 말야
분명히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는데 만원이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아 씨발 어디간거지
말 끝마다 씨발이라 듣고 있는 내가 불쾌해질 정도였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내용이었다.
이만원을 주고 만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다면 물건이 오천원이란 이야긴데
오천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누가 이만원을 내냐는 거다. 만원내고 오천원 거슬러 받지.
아무튼 그 말만 계속 되풀이 하는 모습이 꼭 광인일기의 주인공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상황을 보면서
(꼭 씨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도 표정으로 씨발을 외치던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p.83)
-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속에서 불이 타는 것과 같단다. 화는 불이야. 화를 내는 사람은 불타는 화로와 비슷해. 불은 땔감이 있어야 타지. 난로에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결국 꺼지잖아? 사람이 내는 화도 마찬가지야. '생각'이라는 땔감을 계속 넣어주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식게 돼 있어. 화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다른 감정들(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이 다 그래.
... 중략 ... 화는 불이고 그 불을 타오르게 하는 땔감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네 '생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두는 게 좋겠다.
2010년 7월 21일 수요일
sigur ros - all alright
내일 하마방 수업이 끝이 나고 이어서 새로운 우주를 만난다.
나의 우주와 그녀의 우주가 만나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빈다.
모든 것이 순조롭길
많은 우주를 받아들일 수 있길
아 돌맹이 하나도 내 안에서 깊은 파문을 낼 수 있길
내 안의 우주가 깊어지길 빈다.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옛이야기 들려주기(밑줄긋기)
만에 하나 남보다 뛰어난 '동화구연'기술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당장 능숙한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다 읽고 나면 실망할지 모른다.
이야기는 입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귀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글쓴이의 소박한 믿음이다. 이야기는 기술로 하는 는 몇사람의 것이 아니라 감동과 흥겨움으로 하는 것이며, 말재주 있는 몇 사람의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것이라는 믿음 또한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잘난 아이건 못난 아이건, 공부 잘 하는 아이건 못 하는 아이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키워 갈 권리는 누구든지 갖고 있다는 믿음도 바뀔 수 없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오늘의 핫문장 digging the words
문학에서 느끼고 싶은 것 ; 몇 음절 안되는 단어들에 빠져 쓸려나가고 쓸려오면서 느끼는 그 감정, 내 마음 속의 회용돌이, 소용돌이 그리고 온갖 파문들, 흐느낌들, 자지러짐, 꽃 터지듯 터져나오는 내 안의 멍울들.
끄적1
구경꾼의 탄생(밑줄긋기)
문화는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침입'하는 것이다.
p.41 그들은 구경할 수 있는 기회만 마주치면 구경의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구경에 수반되는 도덕적 책임에 개의치 않으며 구경에 몰두한다. 근대의 대중문화는 한마디로 just looking과 just fun의 세계이다.
p.96 1885년 파리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들은 부끄러움이나 공포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요. 나체 주변에는 남자 못지않게 여자들도 많고, 모르그의 시체 주변에는 방문객이 넘치고, 거리의 소름끼치는 포스터는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고 알리며, 이 신문 저 신문에는 동일한 애용의 견본을 동시에 싣고 있어요.... 중략.... 이 편지는 프로이트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파리의 외장과 표면에 혼란스러워 했음을 드러낸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파리 사람들의 삶은 도시 속에 숨겨져 있지 않았기에 부끄러움을 몰랐다.
p.97 개로와 언론은 의심할 바 없이 발흥하고 있던 소비문화에 노골적으로 연계되었다. 기 드보르가 이론화했고 많은 소비주의에 관한 역사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일상적 삶의 구경거리화는 자본이 삶으로 침투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중략...밀랍 박물관, 파노라마, 디오라마, 극장과 같은 수많은 상업적 오락시설에 군중들은 사실적으로 재현된 '실제의 삶'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현실을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도시 거주민들은 새로운 집합체를 구성하는 수단으로써 보는 것의(구경하는) 즐거움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p.103 공공장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를 보관하는 장소였던 모르그는 익명성이라는 지극히 도시적인 경험을 대표한다. 익명성은 자유가 증대하면 소외도 증대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은 결국 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p.205 그레뱅 박물관은 '현재를 축복하고', '빠른 변화에 동참하고', '광범위한 만신전을 만들어내고',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 했다는 점에서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 ... 중략.... 디오라마가 '지식을 향한 창'이었다면 그레뱅 박물관은 '파리를 들여다보는 구멍'이었다.
p.246 풍자만화가 로비다는 자신의 카툰 '샹피니 전투'파노라마에서 파노라마의 사실성을 조롱했으며 파노라마가 아직 구체화하지 못한 여러 특징들에 대해 언급했다. 로비다는 만화 아래 설명에서 파리봉쇄를 실감나게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흘 동안 머물면서 1인당 훈제 청어 한마리씩만 먹어야만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또 다른 설명문을 통해 전시실은 오싹할 정도로 추운데다 방문객들은 인공 폭우에 흠뻑 젖을 수도 있으며 '폭탄이 터지고 군가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훈장을 받을 만한 사람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중략 ... 사람들이 사실적으로 재창조된 역사적 사건을 좋아했다는 점은 분명했던 것이다.
p.265 영화는 독창성이나 혁신적 기술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세기말 파리에 내재되어 있는 영화적 문화를 구체화시켰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1) 아노미 :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혼돈상태 또는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 상태.
(2) 유리되다 : 1. 따로 떨어지게 되다. 2. 화합물에서 결합이 끊어져 원자나 원자단이 분리되다.
(3) Philippe Ariès (21 July 1914, Blois – 8 February 1984, Paris) was an important French medievalist and historian of the family and childhood, in the style of Georges Duby. Ariès has written many books on the common daily life. His most prominent works regarded the change in the western attitudes towards death.
(4) peep show : 1. 요지경 상자(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상자) 2. 핍 쇼(돈을 내고 작은 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창을 통해 여자가 옷 벗는 것을 구경하게 되어 있는 것)
keep going |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100718
동생과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서울 산지 십년 가까이 되지만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발 디뎌보지도 못했다. 사실 박물관이나 수족관 같은 것에 콧방귀 뀌며 살았다. (디자인전은 물론 흥미롭지만.) 너무 죽은지 오래되어 그 의미가 희미해진 것이나,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 그 의미가 희미해진 것들은 별로 보러가고 싶지 않았다.
한 십분 정도 지났을까
동생은 한 오분만에 한 장소 다 돌고 때 마다 "에이 재미없어 다봤어 갈래" 를 남발하는 한편
나는 "이게 도대체 뭐시다냐" 하며 눈이 휘둥그래져서 수족관에 얼굴 들이밀다시피 하면서 구경했다.
멸치때에서는 음마 저게 내가 먹던 멸치가 맞는거시여?....
거북이 볼때는 우왕ㅋ굿ㅋ 거북이 짱 잘 헤엄쳐
매너티 양배추 먹을 때는 TT우적우적 잘도 먹는다
불가사리 만질 때는 꺄악
상어 볼 때는 수컷인지 암컷인지 하나하나씩 정밀하게 관찰하고
촉수 긴 해파리 앞에서는 한 오분간 넋놓고 앉아있었다.(속으로 이아이들의 촉수가 엉키면 짤리거나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며 엉킨 촉수를 어떻게 푸는지 지켜보았다.)
나 혼자 너무 재밌게 봐서 동생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돌아오는 버스길에서는 우리 둘다 파무침이 되어 코골며 잤다.
wall-e

스토리텔링을 쓰는 예술 작품에는 항상-좋은 작품일 수록- 관객에게 환상을 선사하는 꿈결같은(-혹은 악몽같은) 장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푼쿠툼처럼 말이다.
wall-e에서 나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장면은 이 장면이다.
(+) wall-e 피규어 사고 싶다. 삼치가 생일 선물로 토토로 말고 wall-e랑 eve 사줬으면 뽀뽀를 연발해줬을텐데.
(++)물론 토토로도 좋아 삼치
기말고사 때 쓴 글
[문제 1] <무엇이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까?>
내가 자취를 시작한 것은 오년 전, 그 첫 시작은 ‘홍대’ 중심부의 원룸이었다. 홍대라면 젊은이의 메카, 유흥의 장소, 흥분의 나날(?)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시끌벅적하고 금요일만 되면 야시시하고 예쁜 언니들, 못생기거나 잘생긴 오빠들로 가득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이니 차라리 시끄러운 동네에서 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지만 유흥의 장소이긴 하나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망원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를 가면 ‘홍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성미산 마을이 있다. 성미산 마을은 행정구역이 아니다. 지난 1994년 ‘공동육아’를 참여한 부모 공동체가 모이고 모여 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작년에 성인이 되었는데 그 중엔 내 친구도 있다. 나는 친구 어깨 너머로 해마다 마을 축제, 영화제, 운동회가 열리는 것을 훔쳐보곤 한다. 도둑놈 같이 참여하는 나도 이내 즐거워진다. 무엇이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까?
난 이 질문에 ‘사람을 배려해 만든 건축’은 현답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창조적인 건축가’도 아니라 본다. 아무리 쌈지건물이 ‘인간의 얼굴을 한 건축’이라고 이야기해도 그곳에는 ‘자본’이 있을 뿐 ‘문화’는 없지 않는가? 성미산의 나무와 꽃들은 마을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준다. 아이들은 산에 나무를 심고 자기 이름표를 달아 놨다. ‘성미산을 ‘계발’하지 마세요! 라는 팻말도 볼 수 있다. 성미산 마을이 홍대보다 그리고 쌈지건물 보다 인간다울 수 있고 인간을 배려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라고 본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들리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마을 이웃들이 짧은 시간이라도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을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2] <내 몸뚱이 하나 달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규합총서라는 옛 책을 보면 밥 먹기는 봄 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 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 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울 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밥과 국, 간장, 술을 먹을 때는 훈훈하게, 뜨겁게, 서늘하게, 차게 먹어야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설마 장(腸) 속에 켜켜이 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뿐일까. 내 몸뚱이 건장하게 달래기 위해 밥국장술 먹지만 그 것 하나에 삶의 이치가 있는 법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에는 합당한 때가 있고 방법과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 배영호(배상면주가 대표)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내 몸뚱이 하나 달래는 것 ‘조차’ 못한다. 몸이란 것이 원래 퍼져있으면 계속 퍼져있고 싶고, 먹으면 계속 먹고 싶은 속성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그런 얄궂은 몸의 바람을 때, 방법 가리지 않고 충족시켜 준다. 바야흐로 이십년 동안 내리 이렇게 살았다.
지난 5월에는 세상에 태어난 지 스무 해가 되어 이제 나의 어른 됨을 알리는 성년식을 치렀다. 흔히 말하듯 인생을 계절로 나누어 본다면 나는 이제 막 훈훈한 봄을 지나 지금 여름을 맞고 있다. 밥 나이로 해석해 보자면 지난 날 훈훈한 밥 집어먹고 밥 힘으로 쑥쑥 커서 자랐으니 이제 뜨거운 국 힘으로 살아야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성인식 때 예순 네 살 먹은 혜라니 할머니가 나에게 이야기 해 준 몇 가지 당부의 말이 있다. 그녀가 나에게 해준 수많은 이야기 중 몸, 밥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네 몸을 소중히 여겨라’, ‘네가 먹을 밥은 네가 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라.’ 어찌나 나의 마음을 찌르던지.
훈훈한 봄에 밥 힘으로 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때가 왔다. 국 힘으로 버틸 뜨거운 여름을, 이제 미성년의 금지로부터 벗어나게 될 이 세상을 몸뚱이의 뜻이 아닌 내 뜻으로 사람답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여름을 여름답게 푸르고 무성지게 보낼 것이며 퍼지지 않고 많이 움직이고 많은 땀을 흘릴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몸뚱이 잘 어르고 달래, 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스무 살이 되어 내가 몸뚱이에게 할 수 있는 약속은 그것뿐이다. 내 널 잘 다스리리. 그리고 책임지리.(아마도)
100717
요 몇일간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 했더니 생리 기간이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마냥 비가 억수로 쏟아 내렸다.
열시간은 자고 싶었지만 약속이 빼곡하여 무거운 엉덩이를 질질 끌고 나왔다.
빗물에 발이 허옇게 뿔 것 같아 고무 쪼리를 하나 장만했다.
고무 쪼리가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참 신통방통하다. 버스에 앉아있으면 오분만에 마르니 빗물 속에 있어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덕분에 오늘 쌩쌩 잘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동생과 고깃집에 갔는데 맛이 썩 좋지가 않아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참에
앞테이블에 꼬마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는 부모님과 외삼촌으로 뵈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
아이가 아빠 얼굴에 손을 착 갖다 대면서 하는 말이
아빠 감기 걸렸나봐 얼굴이 빠알갛고 지인짜 뜨거워
정말 보니 얼굴이 벌게서 터지기 일보직전의 빨간 풍선 같았다.
아이의 말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아빠 얼굴 한번 그려줄래? 하면 걸작 하나 나올 것 같았다.

이야기꾼이 쓴 역사, 사기 읽기(수유너머 남산)
이야기꾼의 역사, 사기 읽기
"사마천이외다!"
‘수유너머 남산‘에서 여름을 맞아 청소년 강좌를 준비했다. 이번에 함께 읽을 책은 바로 사마천의 ’사기‘! 아니, 날도 더운데 왠 역사서? 그러나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서를 생각해선 곤란하다. 사기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던 기존의 역사를 타파하고 ’열전‘의 방식으로 사람을 들여다보는 한 권의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번 강좌를 함께 하실 구윤숙 선생님을 통해 들어보도록 하자.
Q. 다른 역사서들과는 다르게 사기열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면 어떤게 있을까요?
사마천의 집안은 원래 사관 출신이었어요. 사관이라는건 왕의 명령을 받아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에요. 이렇게 쓰여진 역사는 일종의 행정 문서라고 봐야겠죠. 그러니까 여기에 자기의 생각을 개입시켜서 하나의 ‘저작’으로 만드는 일은 그 전까지 없었어요. 그런데 사마천은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기록한거죠. 그게 바로 사기의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열전이 독특해요. ‘역사에 등장하지 않을만한 인물’들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자객 같은 인물들이 나오는거죠. 그런 사람들도 하나의 역사를 구성해낼 수 있다는게 사마천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또 본기 같은 경우는 시대의 흐름으로 이야기가 쭉 이어지니까 역사라는걸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러이러한 발전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최상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는거죠. 열전은 이런 식의 역사관을 벗어나고 있어요. 역사란 실제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거죠.
Q. 하지만 구성이 시간 순서대로 되어있는게 아니라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좀 헷갈리지 않을까요?
역사가 선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열전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래도 열전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시대순으로 배열이 되어있어요. 하지만 그 시대에 그 사람만이 살았던건 아니잖아요? 어떤 편에서는 조연급이었던 인물이 그 다음 편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하고, 거꾸로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별 비중이 없는 경우도 있죠. 그것도 하나의 묘미인 것 같아요. 어떤 한 가지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가 있으니까요. “어?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라고 다시 생각해 볼 수가 있다는거죠.
Q. 그렇다면 지금 청소년들이 사기를 읽는다는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제목은 들어봤어도 내용은 모르는 친구들이 많을텐데….
내용은 모르더라도 등장인물 중에서는 들어본 사람이 많을거에요. 예를 들어 진본기에 나오는 진시황 같은 경우도 많이들 알고 있는 인물이고, 초한지에 나오는 항우와 한고조 유방 이야기도 나와요. 그러니까 사기를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영화라든가 다른 여러 가지 형태로 접해봤을 거에요. 그러한 이야기들의 원본을 읽어보면 인물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는 사기라는 글 자체가 가진 특징을 중점적으로 볼 생각이에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관 같은게 있어요. 그게 가장 잘 드러난게 열전인데, 이번에는 그 열전 중에서도 강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를 뽑아서 볼거에요.
Q. 강의 도중에 낭독을 하는 시간이 있던데, 조금 의아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낭독을 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마천은 명문가로도 유명했을 정도로 굉장히 문장이 좋아요. 그 명문을 번역본으로라도 읽어보고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낭독 시간을 넣었어요. 또 같이 읽어본 문장을 가지고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거에요. 강의를 쭉 듣기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잖아요. 낭독 시간은 함께 참여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인거죠.
Q. 마지막으로 강의를 들으러 올 친구들에게 ‘이것 하나 만큼은 제대로 얻어가라’고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면 어떤건가요?
저는 일단 친구들이 ‘사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번 강의에서 다루게 될 다섯 편은 사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앞길을 터주는 정도죠. 그 다음에는 친구들이 스스로 읽어나가야 해요. 그렇게 하면 자기 나름대로 사마천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 생길거에요.
청소년 여름강좌는 7월 27일 화요일부터 시작된다. 사마천의 명문장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는 당대의 영웅들과 함께라면 올 여름은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
걸그룹 꿀벅지? 집단관음증에 소름끼친다(이은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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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나 평론가들이 제발 내 이름 빌려 문제제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뒤에 숨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중에 보면 꼭 내 뒤에 숨더라. 이건 사담이니 기사화하지 마세요, 해도 꼭 쓴다. 오죽하면 내가 직무유기로 다 고소한다고 했었다.
기자가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가. 기자 노릇하며 밥 먹고 살겠다고 했으면 누구를 비난할 때 뒤로 숨지 말고 어떤 비판에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한국사회가 그런 정의로움을 요구하지 않다보니 자꾸 뒤로 숨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역시, 셌다. 여러 인터뷰가 강조했듯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 피하지 않고 뱉어냈다. 연예인의 사회참여, 이효리 표절, 블랙리스트 파문까지 얘기하자고 운을 떼니 바로 직격탄이 떨어졌다. 가요계의 독설가, 별호를 달 만했다.
키 170센티미터에 발 245밀리미터, 몸무게는 묻지 않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 고무신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볼 좁은 발, 참 고왔다.
맨발의 디바, 라이브의 여왕 이은미(45). 지난 12일 서울 합정동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10년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그의 연습실엔 건반, 드럼, 기타 등의 악기들이 마치 오랜 세월 집안에 배치돼 있던 가구들처럼 각자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벽면엔 긴 세월을 지나온 앨범들이 전시돼 있었고, 그 시절 함께 촬영한 포스터들도 걸려 있었다. 데뷔 21년의 기록이 파노라마처럼 장식돼 있다고 해야 할까.
이은미와 나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앉았다. 나는 소파에, 그는 의자에. 노트북을 의자 위에 펴놓고 자판을 두들기며 그의 말을 기록했고, 그는 각진 의자에 앉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편안한 인터뷰가 되기를 바랐는데, 형사와 피의자처럼 묻고 답하는 식이 돼버렸다.
"과시용으로 문화예술회관 짓다보니 콘텐츠 대신 건물 유지보수에 예산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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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록 경신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작한 <소리 위를 걷다> 투어콘서트는 무려 2년에 걸쳐 70개 도시를 순회하는 대장정이다. 어디까지 왔나.
"서울 공연까지 끝냈으니 이제 49개 도시를 돌았다. 17일 부산 공연을 하고나면 50개 도시를 채우게 된다. 3분의 2 정도? 해낸 셈이다."
- 쉽지 않은 일 같다.
"솔직히 힘들다. (웃음) 콘서트를 하면 우선 체력적으로 참 힘들다. 더 힘든 건 매주 만나는 관객들은 몇 개월씩 기다려 이은미를 만나는 것이지만, 나는 같은 포맷의 공연을 매주 하는 거다. 음 그러니까... 무언가 꽉 채운 다음에 비우고, 또 꽉 채운 뒤에 비워주고, 이래야 하는데, 1주일이라는 시간은 뭔가를 꽉 채우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1주일 만에 다 비워내고 다시 꺼낸다는 게 쉽지 않다. 버겁다. 그런데도 역시 고비들이 올 때마다 스태프들이 기가 막힌 연주를 해주면 공중부양 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아, 그래, 맞아, 이거였지... 천상 이거(가수) 하게 태어났나 보다. 하하."
- 일종의 팔자론?
"하하. 그렇다. 사실은 음반 <소리 위를 걷다>를 내기 전 2년 6개월 정도 노래 못할 뻔했다. 또 '애인 있어요' 나오기 전에도 3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꺼이 받아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다 내 능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벗어나려고 했을 때도 있었고, 또 안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또다시 오게 되고, 이런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다. 기어이 이 직업이 나의 운명이라면 노래를 좋은 동반자로 잘 다독이며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대중에게 항상 사랑받는 가수가 왜 '벗어나고 싶다'고 느꼈을까. 직장인도 아닌데.
"새롭게 뭘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이 다 그럴 것 같은데, 음... 뭐랄까. 어쨌든, 목소리로 뭔가 해내는 일도 새로운 창작 작업이기 때문에 수월하지는 않다. 나는 평소 내 몸이 악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악기를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래 묵어서 낡은 소리가 아닌 명기의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가끔 내 재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을 구석구석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됐나.
"충남 태안군 문화예술회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주 긴 편지였는데, 핵심은 태안군 문화예술회관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어? 태안에도 극장이 있어? 공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곤 정말 공연을 했다. 잘 끝났다. 태안군 홈페이지가 칭찬글로 도배될 정도로. 그 뒤로 대한민국 지자체별로 체육관이나 컨퍼런스홀이 아닌 문화예술회관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고, 140개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 공연문화도 대도시 중심이기 때문에 문화예술회관 사정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과시용으로 짓다보니 문화예술회관 건물은 좋다. 그런데 워낙 빤한 지역예산에, 더군다나 문화예술예산은 더 형편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문화예술회관 예산을 모두 시설 관리하는 데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화예술회관의 콘텐츠와 관련된 예산보다는 건물을 유지보수, 관리하는 데 돈을 쓰는 게다. 지역민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큰 건물들이지만, 그래도 뭐 제대로 잘 활용하면 쓸모가 있고, 또 대중음악인들에겐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했다. 대중음악가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 힘들지만 계속 하는 까닭은 사명감 때문인가.
"정말 사명감을 갖고 해보는 일이다. 전국의 140개 문화예술회관에서 모두 공연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다 소화하고 싶다.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관객들은 이은미가 그 마음 알아주니 고마울 테고, 이은미는 그들과 함께하니 즐거운 것이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극장들이 알고 보면 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작업이 이뤄진다면 멋진 일 아닌가."
- 그래서 '문화혁명'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건가.
"대통령 내외분을 초대합니다. 문화관광부 장관님을 초대합니다. 좋은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내외분과 문화관광부 장관님의 자리는 항상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오셔서 현 대중문화의 위치를 확인하십시오. 그 포스터 맞다, 빨간 깃발을 들고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 무수한 공연을 했지만 단일공연으로는 최장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공연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퍽 의미가 깊다. 이 공연을 할 때 가급적 체육시설과 컨벤션홀 같은 회의실은 배제한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을 문화예술회관답게 제대로 운영하는 것을 해 보겠다, 이런 의도가 깔려 있다."
가수 현영이 차라리 솔직한 까닭
- 요즘 공연장의 트렌드는 어떤가. 이은미 공연엔 10대가 별로 없지 않은가.
"부모님이 14세, 15세 되는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또 60~70대 부모님을 모셔오는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애인 있어요' 이후 자기들끼리 공연장에 찾아오는 10대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하하.
또 이 노래가 어떤 교본처럼 돼서 오디션용으로 직접 들으러 오는 친구들도 있다. 10대의 특징은 공연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관심 있는 노래가 나올 땐 눈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관심 없는 노래가 나오면 하품한다. 가끔은 난처하다. 모든 세대를 다 커버하는 음악들로 어떻게 공연을 짜야 하나. 후훗."
- 40대가 주 관객인가.
"30대. 아 인생,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 이런 게 삶이구나, 뭐 이런 걸 느끼신 분들. 이은미의 목소리가 살면서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껴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 2008년 6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립싱크 하는 가수는 립싱커'라 불러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요즘 가요계는 어떻게 보나.
"더 거론할 가치가 있나. 상업적인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그런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차라리 현영 같은 친구는 스스로 돈 벌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차라리 솔직한 표현 같다."
- 이효리씨가 최근 발표한 정규 4집이 표절 파문에 휩싸였다.
"가요를 담당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말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가 문제가 크게 불거지니 그때서야 얘기를 한다. 이미 음원은 다 팔아서 수익은 다 챙긴 뒤의 일이다. 뭔가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표절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작곡가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는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들의 작품은 시장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가장 중요한 건 양심의 문제다. 표절은 시작 때부터 제작자도, 본인도, 노래를 부른 가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작자가 원해서 그 음악을 부른 가수도 이미 표절이라는 걸 알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물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 이효리 말고도 MC몽, 손담비, 장윤정 등등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표절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다. 저작권협회에서 갖고 있는 규정을 보면 몇 소절 이상이면 표절? 창작 작업과 관련해 표절을 구분하는 잣대도 애매하다. 스스로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 표절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는 문화가 있다. 인기가 있는 사람이니 쉽게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기 있고 돈 잘 벌면 '장땡' 아닌가.
남의 걸 베끼는 행위는 나쁘다는 여론이 팽배하다면 함부로 표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남의 작업을 훔치는 사람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별로 규제가 없으니 계속 반복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한국의 이중잣대가 있다. 어떤 사람은 미국 국적 때문에 한국에 다시는 올 수 없는 역적 취급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는데도 버젓이 활동한다. 표절했어도 활동 중단하고 안 나오면 그만인 걸로 되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유연한 잣대를 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참 복잡한 프리즘을 갖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이효리 표절 사건과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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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후배가수들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자기 음악을 알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이런 호소도 했는데. 가수, 연기자, 코미디언 경계가 무너지고 돈이 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만 번성하는 게 아닌가.
"제일 답답해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빠르다. 대중이 음악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능력도 빠르지만, 굉장히 빨리 지루해한다. 대중의 취향에 맞추고 따라가다 보면 정말 숨이 턱턱 막힌다. 아마 기본과 상관없이 활동해도 용납이 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뿐일 게다. 10대 어린아이들이 팀을 이뤄 음악계의 파워를 나타내는 나라도 여기뿐일 게다. 쇼 오락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는 일본도 10대 걸그룹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게다."
-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보나.
"걱정이 앞선다. 청소년이면 아직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의 나이다. 사회인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하는 나이이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걸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모든 걸 반납하고 스타의 길을 걷는다. 그들의 20대, 30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 아이가 우리 조카라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도록 그냥 내버려두겠나. 미성년자들에게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히고 무방비 상태로 우상화하는 방법이 옳은가. 개념 없는 어른들이 이른바 '삼촌팬' 운운하며,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이런 춤을 추니 너 참 섹시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옳은가. 아니 그런 말이 나오나?
아동성추행범과 뭐가 다를까. 걸그룹 아이들은 공인된 작업을 거쳐 나오는 선수들이니까 괜찮다? 이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름끼친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3년 된 아이에게 꿀벅지? 꿀벅군? 무섭다. 이게 다 어른들이 붙인 별명이다. 도무지 양심불량의 끝이 어딘지 정말... 정말 슬픈 한국의 자화상이다."
- 장자연씨가 성접대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봤나.
"전 세계 쇼엔터테인먼트산업은 그런 것 같다. 누구나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쇼엔터테인먼트산업의 권력은 그런 걸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그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본다. 슬프지만 그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예측 가능한 정권이다"
- 최근 김미화씨가 KBS와 블랙리스트 파문에 휩싸였다. 김제동씨로부터 시작된 '출연 금지' 때문인데 혹시 이은미씨도 앨범 발표 뒤 출연 자제 요청 같은 걸 받은 바 있나.
"하하하. 그거 질문할 줄 알았다. 그런데 뭐... (한참 말문을 닫았다가) 이 정권 자체가 예측 가능한 정권 아닌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 김미화씨가 아무 일 없었는데 그랬다고 그럴까. 그런데 참 재밌다. 이명박 정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정권이다. 누군가 어떤 파문에 휩싸이면, 친구들끼리 '이거 곧 그만두겠는데' 이러면 정말 그만두게 되더라. 나 또한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늘 쇼오락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이라면 불이익을 당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나는 늘 나가던 사람이 아니므로 그런 불이익에선 오히려 자유로운가. 하하."
- 소셜테이너라는 말이 있다. 이은미씨에게 붙는 별칭으로 어떤가.
"칭찬일 수도 있고 족쇄일 수도 있다. 본인이 원치 않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나는 대중음악가다. 대중이 찾아주지 않으면 존재 이유나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받는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음악인이므로 음악으로만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2008년 10월 YTN 해직기자들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이런 공연 무대에 올랐다고 피해를 좀 보면 어떤가, 지금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예술인의 시각에서 본 이명박 정부, 어떤가.
"국민을 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 국민은 무언가를 가르쳐서 알려주는 대상이 아닌데 자꾸 거기서 출발하려고 든다. 놀라운 점도 있다. 한국사회는 되게 종잡을 수 없는 사회라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결과를 보면, 상당히 놀랍다. 아니, 이들은 그동안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거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침묵하는 다수가 있구나, 그들의 힘은 대단하다, 뭐 이런 걸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의 건전성이 남아 있네, 재밌다, 이런 생각을 한다."
- 연예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다. 조언을 한다면.
"슈퍼스타K 예선에 200만 명이 몰렸다고 들었다. 한마디 조언한다면, 가수는 생각만큼 절대 화려한 미래가 보장되는 일이 아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모르는 가운데 적당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된다. 실제로 많은 가수들이 거의 수입이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다. 투잡, 쓰리잡 안 하면, 악기를 살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환상으로 덤벼들 일이 아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 나이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포기하면서 선택한다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우선 음악인이 될 것인지, 연예인이 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음악인이 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 참 힘들다. 나도 똑바로 못 살고 있기 때문에.
그나저나, 전 인구의 반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니 참 큰일이다. 나는 되게 운이 좋았고 우연히 가수가 됐다. 흥얼거리는 내 노랫소리를 들은 선배가 권유했고, 2년 반 뒤에 이 길을 걷게 됐다."
인구의 절반이 연예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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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뭘 하려고 했었나.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단국대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돼 버렸다. 우연히 이렇게 됐는데, 재능이 있었던지 금방 사람들 눈에 띄었고, 내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후회는 안 되는데,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이 일은 하고 싶지 않다."
- 왜?
"버겁다. 원래 성격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썩 즐기지 않는데, 노출돼 있는 직업을 갖다보니 버거운 게 참 많다. 결과적으로는 재능의 한계다. 더 잘하고 싶은데 바닥은 보이고,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늘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니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힘들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가수가 연예인이 되기 위한 도구로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싫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일단 가수로 출발했다가, 조금 뜨면 드라마를 통해 배우가 되고, CF 스타, 빅 스타의 순으로 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음악 작업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러니 가수가 평가절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게 진지하게 이 직업을 갖고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 '애인 있어요'는 국민가요다. 고 최진실씨도 이 노래를 애창했었다고 들었다. 참, 최진실씨와 마찬가지로 최근 박용하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직업의 특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알몸으로 쇼윈도에 전시된 기분이랄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속으로 아파하는 이들이 더 많을 텐데... 걱정이다. OECD 국가 중 우리가 자살률 최고라는데 정말 걱정이다."
인터뷰가 끝났다. 뭔가 더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센 발언을 자제했다. '예측 가능한 정권'과 붙어 승산 없는 게임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혔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앞으로 활동계획을 물었다. 새 음반은 냈는데 방송을 통해 새 노래를 전하지 못해 틈틈이 방송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음악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던 중에 그의 노랫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래 눈치 보지 않고 누가 뭐래도 내 할 말은 해야겠어
모두 이리 나와 숨지 말고 나처럼
자유롭게"
- <소리 위를 걷다2> 에서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2010년, 스무 살이 되는 나르샤를 보며 예순 네 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내가 만약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1.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2. 스무 살이 되도록 별 탈 없이 살아 있는 것을 고마워하겠습니다.
3. 스무 살이 되도록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들에게 고마워하겠습니다.
4. 나와 함께 놀아 준 친구들을 고마워하겠습니다.
5.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6. 잘난 친구를 시샘하지 않겠습니다.
7.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의미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8. 불안을 젊음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9. 하루에 단 몇 페이지라도 좋은 책을 찾아 읽겠습니다.
10. 하루에 한번 씩은 꼭 하늘을 쳐다보겠습니다.
11.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12. 모든 생물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13.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아내겠습니다.
14. 내가 먹을 밥은 내가 번다는 생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15. 일이 안될 때 남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16.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17. 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18. 가능한 한 한 여행을 많이 하겠습니다.
19. 악기 하나를 꾸준히 익히겠습니다.
20. 편견에 사로자히지 않도록 늘 마음을 열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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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월 나의 스무살 됨을 축복해주며 예순 네 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보내준 축사-편지-당부말이다.
사리같은 스무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스로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씨앗들이 마음에서 자랐을 때가 내가 중학생 소녀였을 때었던 것 같다. 그 씨앗이 적재적소의 시기에 싹을 틔운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와 힘을 합해 싸워본 것, 학교를 자퇴한 것, 하자에 온 것, 멋진 어른들을 만난 것, 멋진 할머니들을 만난 것, 멋진 친구들을 만난 것, 멋진 공간을 만난 것. 자원 이상의 자원이 넘쳐나는 하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 그리고 이제 막 청년기가 된 이 순간에도 그런 만남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러면서 때마다 이런 가슴벅찬 블레싱을 받을 수 있는 것. 다른 것이 행복이 아니다.
성년이 된지 두달이 다 되어간다. 어제는 내가 십대 때 쓴 글쪼가리들을 읽어 보았는데 그 때가 더 현명했던 것 같기도 하다. 히히.
서른까지 잘 살아보련다.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일하며 멋진 사람들과 시너지 나는 작업들을 하고 싶다.
100715
느긋히 저녁을 보내고 있다보니, 대학 같은 과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다음 주 주말에 시간있니?
자기 손해 볼 짓 안할 사람이라 무슨 꿍꿍이인가 궁금하여
무슨 일이세요?
물어보니
응 오빠랑 친한 사람끼리 여행가려구.
같이 대동할 사람들 이름 읊어주는 것을 들어보니 지난 학기 팀을 만들어 부정시험 친 그 무리들이었다.
더 첨가된 사람이 있다면 지난 학기 혼자 공부해서 A+ 받았다고 소문자자한 그 소녀.
친한 사람끼리 즐거이 여행가자는 게 아니라 부정시험에 도움 될 사람을 지 편으로 만들려는 거겠지.
치졸한 인간은 파벌을 만들고
현명한 사람은 은인을 만든다.
에라이 퉤퉤
아침에 들렀던 홈플러스에 천연 치클 껌이 있었다.
단순히 통이 예쁘다는 것에 홀려 생애 처음으로 이천원짜리 껌을 씹어보았는데
역시 싸구려 고무 이용해 만든 오백원짜리 껌이 훨씬 속편하다.
더 편해 지려면 물 한통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 낫겠다.
오후에는 내가 문자를 어떻게 보내야 좋겠는지 옛정 어린 삼치에게 물어보자
나보고 매력없는 찐득거리는 여자란다.
이게 나인걸 어쩌누 아 찐득거리는 연애하고 싶다.
생각하다가 어쩌면 당분간 연애는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할머니는 무척 외로웠을겁니다.
못다한 배우의 꿈, 이제는 잃어버린 젊음, 그 모든것도
외로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어느날 할머니는 주인을 잃은 그림자 하나를 받아줍니다.
늘 혼자였던 할머니의 첫번째 친구였죠.
이제 , 할머니의 가방안엔 수많은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장난꾼','무서운 어둠','외로움','밤앓이', ....
무덤덤한 고요속에 자기를 감추고 다니던 할머니는
이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쓸쓸하면 쓸쓸한대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기쁠때는 기쁨의 그림자를 꺼내고 ,화가날땐 분노의 그림자도 꺼냈겠죠.
이제 할머니는 더이상 초라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할머니는 '죽음의 그림자'도 받아줍니다.
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요.
이제 할머니는 더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Michel Paul Foucault(미셸 푸코)

1926년 10월 15일 프랑스 중서부 프와티에(Poitiers)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였다.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자로 파리대학교 벵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臨床)을 연구하였다. 인간의 지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탐구하였고 해답을 모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 또한 업압적인 권력의 구조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파헤쳤으며 정신병의 원인을 사회적 관계속에서 밝혀내려 하였다. 1961년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한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에서 서양문명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논리성을 비판하고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 즉 광기(狂氣)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관계를 파헤쳤다. 이 저술로 푸코는 세계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 떠올랐다.
정신병과 사회적 관계를 밝힌《임상의학의 탄생》(1963) 을 저술하였으며 1966년에는 역사를 통해 지식의 발달과정을 분석한 《언어와 사물》을 저술하였다. 서구 지식의 역사는 두 번의 단절된 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였고 지식을 연속성을 가진 발달과정으로 보는 기존의 입장을 착각으로 규정하였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考古學)》에서는 전통적인 사상사를 비판하였다. 1970년대에 푸코는 부르주아 권력과 형벌제도에 대한 분석의 결과물인 《처벌과 감시》(1975)를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 푸코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한 법률과 억압적 통치구조를 파헤쳤다. 인간의 알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억압하는 권력과의 관계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푸코는 지식은 권력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1984년 6월 25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였다.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 (-the winner stand alone)
1. 우리가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잊게 하는 모든것. 그것때문에 우리는 생산하고 또 생산하며 돈을 벌기위해 일에만 열중한다.
2. 전쟁을 벌이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것. 이를테면 제네바 협정
3. 대학에서 수년간 공부한 다음 백수가 되는 것.
4. 30년 후에 은퇴하기 위해 아무 재미도 없는 일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는것.
5. 은퇴한 다음 여생을 즐길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몇 년 후에 권태속에 죽어가는 것.
6.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
7. 행복보다 돈이, 돈보다 권력이 훨씬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8. 돈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야망없는 인간'으로 취급하며 비웃는 것.
9. 자동차, 집, 복장따위를 서로 비교하는것,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이런 비교의 결과로 생을 규정하는것.
10. 외국인에게 절대로 말을 걸지 않는 것, 이웃에 대해 험담하는 것.
11. 부모는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
12.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것, 그리고 아이들을 핑계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같이 사는것. 마치 부부가 지겹도록 싸울 때 아이들은 옆에 없었다는 듯이....
13. 다르게 살아보려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
14. 침대 옆의 신경질 적인 알람시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것.
15. 인쇄라면 무조건 믿는것.
16. 실제 기능은 전혀 없지만 '넥타이'라는 엄숙한 이름을 가진 색깔있는 직물 띠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
17. 직설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것. 내가 정작 알고싶어 하는게 뭔지 상대가 짐작하고 있다 해도.
18. 눈물이 쏟아질것같은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것. 감정에 솔직한 이를 딱하게 바라보는것.
19. 예술이란 부의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아무 가치도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20. 쉽게 얻어진 거라면 모두 경시하는 것. 희생없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21. 우스꽝스럽고 불편해도 유행을 따르는 것.
22. 유명한 사람은 모두 집에다 억만금을 쌓아놓고 있으리라 믿는 것.
23.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24.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척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
25.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행여 유혹하려한다고 오해 받을까봐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
26.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문을 향해 서 있는것. 그 안에 사람이 꽉차 있더라도 마치 혼자인것처럼 느끼면서
27.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큰소리로 웃지 않는 것
28. 북반구에서 항상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것. 봄에는 팔을 들어내는 옷을 입어야 하고(추워도 할 수 없지), 가을에는 모직 조끼를 입고(더워도 어쩔 수 없고.)
29. 남반구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흰 솜뭉치로 장식하는 것. 예수의 탄생과 겨울은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30.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알게 됐다고 믿는것.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있는 삶을 살지도 못했으면서도.
31. 자선파티에 한 번 나간다음, 세상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는것.
32.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하루 세 끼를 꼭 챙겨먹는 것.
33. 다른 사람이 모든 점에서 나보다 낫다고, 더 잘 생겼고, 더 유능하고,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다고 믿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뭔가 시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
34. 자동차를 마치 무적의 갑옷이나 무기인 양 사용하는 것.
35. 운전하면서 욕설을 퍼 붓는것.
36. 제 자식이 잘못을 저지른 이유는 모두 아이가 사귀는 친구 탓이라 생각하는 것.
37.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결혼하는 것. 사랑은 그 다음 문제.
38. 아무것도 시도해본 게 없으면서 항상 '시도해봤다'고 말 하는 것.
39.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것을 아무 기력도 남지 않을 먼 훗날로 미루는 것.
40. TV라는 마약을 매일 엄청나게 복용하면서 우울함을 잊으려 하는 것.
41. 자기가 얻은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
42. 여자들은 축구를 싫어하고 남자들은 장식과 요리를 싫어 한다고 믿는 것.
43. 모든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
44. 선하고 점잖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힘없고 나약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믿는 것.
45.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무례함을 '강한개성'의 동의어라고 믿는것.
46. 내시경 검사(남자들)와 출산(여자들)을 무서워하는 것.